스위스 태생의 천재화가 파울 클레는 캔버스뿐 아니라 삼베, 천, 거즈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고 유화, 수채, 동판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하면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완성했다. 클레의 국내 첫 전시에 선보이는 ‘눈’(1938년)은 삼베에 파스텔로 그린 작품이다. 사진 제공 소마미술관
《한 남자가 있다. 귀는 아예 없고 두 눈은 질끈 감고 있다. 시대의 우울이 무겁게 내려앉은 외부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읽힌다. 파울 클레(1879∼1940)의 석판화 ‘생각에 잠겨 있는 자화상’(1919년)이다. 삼베에 파스텔로 그린 ‘눈’(1938년)이란 작품엔 귀와 코도 없이, 눈 하나만 달랑 있다.
클레는 ‘한 눈으로는 보고 다른 한 눈으로는 느낀다’고 했으니 안 보이는 눈은 가슴속에 있을 것이다.》
둘 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SOMA)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파울 클레-눈으로 마음으로’ 전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현대 추상회화의 시조인 클레의 작품들을 선보이는 국내 첫 전시란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스위스 베른에 있는 파울 클레 미술관 소장품 중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드로잉 및 회화 등 60점을 전시 중이다. 섬세한 드로잉과 때론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하고, 때론 괴기스러운 작품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미술 교과서에 등장하는 ‘줄타기 곡예사’와 같은 테마로 만든 석판화 ‘줄타기 곡예사’(1923년)에서는 전쟁 후의 암울함과 인간의 연약함을 엿볼 수 있다. 종이 위에 가는 선을 촘촘히 그려낸 ‘오르페우스를 위한 동산’(1926년)에선 섬세하다 못해 작가의 강박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는 1914년 튀니지 여행 이후 색채에 눈을 뜨는데 튀니지 스케치(1914년)와 피라미드(1930년, 1932년)에서는 단순화한 면 분할과 독특한 색감이 살아 있다. 채색화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1916년)는 서정적인 제목만큼이나 색채와 구성에서 시적인 운율이 느껴진다. ‘천사의 탄생‘(1934년), ’죽음의 천사‘(1940년) 같은 천사가 자주 등장하는 후기작들은 강렬한 색채와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석판화 ‘줄타기 곡예사’ 사진 제공 소마미술관
클레는 현대 미술의 거장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며 창의적인 미술가로 첫손에 꼽힌다. 자신이 보고 읽고 들었던 것을 바탕으로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선과 색채의 마술을 통해 추상미술의 세계를 추구한 것. 그래서 클레의 작품은 한눈에 파악되기보다, 가슴과 함께 머리로 생각하며 봐야 한다.
스위스 베른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미술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조예도 깊었다. 기본 색조를 바탕으로 여러 색조를 변형시킨 그의 작품에서 대위법의 영향이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1920년대에는 근대의 가장 유명한 미술학교인 독일 바우하우스의 교수를 지냈고 1930년대 스위스로 돌아가 죽을 때까지 평생 91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말년에는 피부가 굳어지는 병으로 작업에 지장을 받았으며 독일 나치로부터 퇴폐적 미술가, 정신병자의 작품으로 모욕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숨지던 해인 1940년에만 366점의 작품을 남겼다. ‘하루도 빠짐없이 선을 그린다’가 그의 모토였다.
전시는 7월 2일까지(월요일 휴관). 어린이들을 위한 클레 그림 체험 코너도 마련돼 있다. 어른 1만 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6000원. 협찬 ㈜KT. www.somamuseum.org 02-410-1060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소마미술관:
“서울 안에 이런 미술관이 숨어 있었다니….” 새 단장을 마치고 7일 파울 클레전의 개막과 함께 다시 문을 연 서울 송파구 방이동 소마미술관(구 서울올림픽미술관·사진)을 찾은 사람들의 첫 반응이다. 서울올림픽미술관의 영문 이니셜을 따서 ‘소마(SOMA)’로 이름을 바꾼 이 미술관은 43만여 평의 드넓은 녹지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있는 전시실을 드나들다 보면 창밖에 펼쳐진 푸른 하늘과 잔디밭 등이 한 폭의 작품처럼 눈을 즐겁게 한다. 원래 이 미술관은 건축가 조성용 씨가 설계해 2004년 9월 서울올림픽미술관으로 개관됐다. 개관 뒤 미술계의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 올해 들어 이름을 바꾸고 제2의 개관을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