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장관의 별명은 짱구다. 머리만 크고 든 게 없으니까.”
1974년 32세로 최연소 서울대 교무부처장이 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정창현(鄭昌炫·65·사진) 교수는 당시 문교부 장관이 주재한 식사 모임에서 이렇게 일갈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아연실색했다.
국내 원자력학 박사 1호로 천재이자 애주가, 할 말을 하는 ‘괴짜’로 통했던 정 교수가 10일 서울대를 떠난다.
1959년 신설된 서울대 원자력공학과(현 원자핵공학과) 1회 입학생인 정 교수는 1970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0세 때 서울대 최연소 교수가 됐다.
그는 MIT에서 박사학위 제출 자격시험에 합격한 뒤 논문을 5개월 만에 제출했다.
MIT 측은 “논문은 훌륭하지만 학위를 주기엔 너무 이르다”며 1년이나 학위 수여를 끌다 박사학위를 줬다. 그의 ‘천재성’을 보여 주는 일화 가운데 하나다.
정 교수는 원자력발전소의 안전관리 및 중대사고 대처 방안, 원자로 이론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정 교수는 제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의 아들로 경남 진주시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초등학교 졸업을 한 달 앞둔 1953년 1월 부산 다대포 창경호 침몰사건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한꺼번에 잃었다.
졸지에 고아가 된 그는 동생 셋을 데리고 친척집을 오가며 어렵게 생활했다. 대학 입학을 포기한 그는 친구들이 서울로 대학입학시험을 보러 가는 게 부러워 무작정 상경해 경기고에 다니던 부유한 친구의 집에서 매일 술을 얻어 마시며 살았다.
정 교수의 명석함을 알고 있었던 이 친구의 어머니는 “네가 서울대에 가면 한 학기 입학금을 대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입시 석 달을 앞두고 72시간 공부하고 24시간 자는 식으로 공부했다. 굳은 결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눈썹을 민 채 공부한 그는 마침내 서울대에 합격했고, 서울대 총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정 교수는 제자들이 자신이 쓴 글을 모아 펴낸 퇴임 기념 산문집 표지에 ‘주졸(酒卒)’이라는 아호를 적었다. 아호에서 알 수 있듯이 술에 얽힌 일화가 적지 않다.
서울대 입학시험일인 1959년 겨울 이른 아침. 그는 서울대 공대 옆 한 중국음식점에 까까머리 교복 차림으로 들어가 주인을 깨워 배갈(고량주) 한 병을 주문했다. 주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배갈 한 병을 벌컥벌컥 마시고 곧바로 시험장으로 갔다. 그러고는 서울대에 수석 합격했다.
정 교수는 “난 배 속에 ‘군불’을 때야 머리가 돌아가거든. 서울대 입학시험장에서 어디선가 술 냄새가 나기에 ‘나 같은 놈이 또 있나’ 해서 좋아했는데 알고 보니 내 입에서 나는 술 냄새여서 어찌나 실망했던지…”라며 껄껄 웃었다.
정년퇴임식은 10일 오후 6시 반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