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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을 위한 책 20선]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입력 | 2006-03-08 03:05:00


《정신분석을 통한 치료란 성인이 된 자기가 어린 시절의 자기를 보살펴 주는 행위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우리가 우리 자신 안의 아기에게 부모 역할을 한다’고 표현된 것도 있었다. (중략) 내가 비로소 내 안의 상처 입은 아기를 알아보고, 그 아기를 보살피기 시작했다는 의미인 모양이었다. 문득, 가슴이 설레는 기분이었다. ―본문 중에서》

책을 읽다가 처음엔 화가 날지도 모른다. 서른 살이 넘으면 자신의 문제에 대해 더는 유년기의 상처나 가족사에 기대어 핑계를 대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똑 부러지게 살아온 당신이라면…. 하지만 그런 당신이기에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시경 하나가 기억 속을 꿈틀꿈틀, 몰래몰래 돌아다니고, 급기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오래전 잊고 있었던 순간순간들이 자꾸 머리를 디밀고 물을 튕기며 수면 위로 솟아오르려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쩔쩔매며 아이처럼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세진이 그러했듯이….

두 친구가 있다. 서른일곱 살의 세진과 인혜.

‘그것이 인혜의 함정이었다. 사랑과 연민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 …인혜는 자주 남자들이 가여웠다. (중략) 한 남자와 밥을 먹다가 그를 안아준 적이 있었다. 그가 밥그릇을 통째로 국그릇에 엎은 뒤, 거의 마시는 것과 같은 속도로 허겁지겁 퍼 넣는 것을 보고서였다. 의례적인 인사말로, 하시는 일은 잘되느냐고 물었을 때, 빠르고 높은 목소리로 모든 일이 잘되고 있다고 말하는 남자를 안아준 적도 있었다. …그 택시 운전사도 마찬가지였다.’

택시를 탔다가, 가출한 아내를 찾기 위해 택시 운전사가 됐다는 남자와도 하룻밤을 함께한 인혜의 행동은 무엇으로 설명해야 할까?

남자들이 친절할 수밖에 없는 미모와 미소를 가졌고, 스스로 모든 일을 경쾌하고 완벽하게 해결해 온 성공한 건축가 세진이지만, 그녀는 3개월 이상 사랑을 지속하길 두려워한다. 항상 전화를 걸지 않고 받기만 하는 사람. 한 번도 타인에게 부탁이란 걸 못하는 사람. 그녀는 서른일곱 살 되던 해 벼랑 끝에 선 것처럼 깨닫게 된다. 서른일곱 해 동안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 본 적도, 누구를 사랑해 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세진의 이런 행동은 또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이 소설은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나 자신, 20년 전 일기장에서나 지금의 일기장에서나 놀랍도록 똑같은 고민과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벗어날 수 없는 ‘나’를 알아가는 심리치료서다. 세진의 심리치료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세진 대신에 내가 그 긴 의자에 누워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는 이상한 체험을 한다고나 할까?

아마도 우리는 철든 척하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인생에 더 어리광을 부렸어야 했고, 더 떼를 썼어야 했고, 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었어야 했고, 누군가 와서 그런 나를 꽉 안아줬어야 하나 보다. 울음이 그칠 때까지 꼭. 이제는 괜찮다고….

마법사가 나타나 딱 한번만 네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네 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나무 대문 앞에 혼자 앉아 있는 네 살짜리 꼬마 여자아이를 꼭 껴안아 주고 싶다.

“넌 커서 아주 행복한 어른이 될 거란다.”

차영아 SBS 구성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