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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크엔드]日 ‘100엔 숍’ 서비스 - 창고업까지 확산

입력 | 2005-12-02 03:09:00


모든 물건을 100엔(약 900원) 균일가에 파는 일본의 초할인 판매점 ‘100엔 숍’.

백화점, 할인점, 편의점에 맞먹는 새로운 유통 업종의 지위를 구축해 온 100엔 숍이 최근 취급하는 품목을 다양화하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처음엔 잡화류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야채 과일 육류 해산물 쌀 등을 취급해 슈퍼마켓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100엔 숍이 위세를 떨치면서 100엔짜리 동전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갔다.

한 유통업체는 가격을 1엔 더 낮춘 ‘99엔 숍’ 슈퍼체인을 열어 빅히트했다. 납품업체들은 “채산을 맞추기 어렵다”고 울상이지만 100엔 숍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탓에 양을 줄여서라도 이곳에 물건을 댄다.

100엔 숍에서 파는 상품의 경우 질은 떨어지지만 업체가 품질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식중독 등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서 물건을 파는 전통적인 개념의 100엔 숍은 약 5000곳. 10월 초엔 한 업체가 미국에 매장을 내기도 했다.

100엔 숍의 출현은 일본의 장기 불황이 계속된 1990년대 후반, 봉급 생활자들의 지갑이 얇아진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회복세가 뚜렷한 요즘도 100엔 숍은 미용실 가라오케 전자오락실 만화방 등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분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도쿄(東京)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긴자(銀座) 거리에 6월 ‘100엔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를 모토로 내건 이색 건물이 등장했다.

일본 중부 미에(三重) 현에서 ‘100엔 편의점’으로 자본을 축적한 한 업체가 도쿄 진출의 전초기지로 세운 ‘뉴 에스마트 긴자점’이다. 지하 1층, 지상 6층인 건물 전체의 매장이 100엔을 단위로 각종 상품과 서비스를 판다.

1층은 잡화와 식품류를 100엔에 파는 매장으로 꾸몄다. 건물의 진가는 2층에서 드러나기 시작한다. 위로 올라가면 미용실, 당구장, 인터넷 카페 등이 차례로 고객을 맞는다. 지하 1층엔 도심의 ‘강태공’들을 겨냥해 시간제 낚시업소가 들어섰다.

남녀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미용실은 분당 100엔으로 요금이 계산된다. 예컨대 500엔어치를 주문하면 미용사가 5분간 머리를 손질해 주는 식이다. 터무니없이 싼 요금으로 머리를 맡기면 곤란하지만 숙련된 미용사들을 고용했기 때문에 500∼1000엔이면 충분하다는 게 이곳을 이용해 본 이들의 설명이다.

시간 절약과 가격 파괴를 내세우며 일본 대도시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는 ‘저가형 미용실’의 기준 요금이 1000엔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수준이다. 당구장과 카페, 낚시업소 등은 15분당 100엔이다.

업체 관계자는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강한 긴자에 100엔 숍을 내면서 불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백화점에서 고가 브랜드 제품의 쇼핑을 마치고 우리 점포에 들르는 부유층 고객도 많다”고 소개했다.

이 점포의 성공 사례는 최근 일본 유통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100엔 숍 다양화’의 한 예일 뿐이다.

수도권 사이타마(埼玉) 현의 복합오락시설에 들르면 가라오케 암반욕 등 30종의 서비스를 100엔 단위로 24시간 내내 즐길 수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지만 비회원이라도 요금이 10분당 100엔으로 싸다.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한 ‘100엔 복합오락업체’의 회원은 600만 명에 이른다. 20대의 젊은 층이 가장 많지만 주말을 맞아 자녀를 데리고 찾는 가족 단위의 고객도 적지 않다.

대도시 거리를 걷다 보면 100엔을 내고 제한된 시간 동안 커피 등 음료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100엔 카페와 10∼15분당 요금이 100엔인 가라오케의 간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짐 보관용 창고를 4시간당 100엔씩(1평 기준)에 빌려주는 ‘100엔 창고’도 성업 중이다. 장기 출장이나 여행으로 가구나 가전제품 등 부피가 많이 나가는 물건을 맡기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이용률은 100%에 육박한다. 창고를 정식으로 빌리려면 보증금 명목으로 몇 달치를 한꺼번에 내야 하지만 100엔 창고는 임대료를 시간당으로 계산해 싸다는 것.

100엔 숍이 인기 있는 것은 균일가를 선호하는 일본 사람들의 소비 특성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2년 전 미쓰코시 백화점이 ‘24금(金) 사자조각품’ ‘자신의 동상을 만들 수 있는 권리’ 등 모든 상품과 서비스를 100만 엔 균일가에 판매하는 초고가 상품전을 열었을 때도 개점 시간이 되기 전에 수백 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