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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전국대학총장協 회장 맡은 안병만 한국외국어대 총장

입력 | 2005-03-29 18:38:00

안병만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은 “총장들은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개혁의 당사자로서 어려움도 많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종승 기자


《“대학을 개혁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는 대학 총장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학은 산업현장에서 당장 써먹을 일꾼을 찍어내는 곳이 아니라 학생을 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곳이어야 합니다.” 요즘 정부의 교육정책은 대학 구조개혁에 초점을 두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4일 대통령에게 내후년까지 국립대를 50개에서 35개로 줄이고 정원도 크게 감축하겠다고 보고했다. 대학들도 구조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의 방향이 다소 어긋나고 있다는 비판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지나치게 경쟁력만을 강조하다가 자칫 ‘더 크고 중요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전현직 대학 총장 모임인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안병만(安秉萬·64) 한국외국어대 총장도 이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최근 안 총장은 1995년 2월 발족한 이 단체의 5번째 회장으로 선임됐다.》

―요즘 대학 구조개혁 문제로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대학 개혁은 어떤 방식으로든 해야 합니다. 어디나 개혁은 기득권층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어렵지요. 학과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은 교수들의 자리와 직결돼 저항이 큽니다.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올해부터 학생들이 입학 후 1년간 공부한 뒤 마음대로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자유전공제’로 320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만큼의 정원을 각 학과에서 줄여야 했는데 역시 반대가 적잖았어요.”

―지방 소재 대학과 수도권 대학은 구조개혁의 목적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안병만 한국외국어대 총장이 16일 한국외국어대 서울캠퍼스 국제관 애경홀에서 조제프 카빌라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에게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국외국어대

“서울에 있는 대학은 발전을 위한 개혁이지만 지방은 대부분 생존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생존이 걸린 대학은 좀 더 노력을 해야겠지요. 당연히 총장끼리도 의견과 입장이 엇갈리는 측면이 있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대학 편입제도를 들 수 있어요. 수도권 대학으로의 편입 규모가 커지는 만큼 지방대의 어려움은 가중되니까요. 지방대와 수도권 대학이 공존할 수 있는 정책이 모색돼야 합니다. 이를 물밑에서 조정하는 것이 제 역할이기도 하고요.”

―대학 개혁을 추진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정원을 줄이면 학교 재원이 줄고 교수를 늘리려면 재원이 필요하니 모순 아닙니까. 이런 모순을 어떻게 타개하느냐가 가장 문제입니다. 등록금을 올리든가, 정부에서 지원금을 늘리든가, 외부 기탁금이 늘어나든가 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도 쉽지 않아요.”

이 대목에서 안 총장의 목소리가 다소 높아졌다. 위기에 내몰려 타율적으로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과거에는 정부가 대학의 양적 확대를 장려했습니다. 한국외국어대만 해도 4000명이 이제는 1만8000명이 됐으니까요. 그러다가 이제 학령인구가 확 줄었잖아요. 그러니 이제는 대학을 줄이자는 것인데 그건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무차별적으로 늘려 놓고 이제 와서 줄이겠다니 당황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이 낮은 것은 사실 아닙니까.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한 것도 교육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학교육이 비판을 많이 받고, 선진국에 비해 엉성한 것도 사실이지만 짧은 기간에 비약적인 발전을 했어요. 역사가 짧고 재정이 어려워서 그렇지 수준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대학을 너무 부정적, 비판적으로만 보지 말고 생산적인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대학 총장이라는 자리가 과거와는 달라진 것 같습니다. 발전기금을 많이 모금하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되기도 하고요.

“한국 대학의 경우 1990년대 초반을 전환점으로 대학 총장의 위상과 역할이 달라졌어요. 그 이전에는 총장이 학식과 덕망을 대표했지요. 1990년대에 대학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총장의 역할이 미국처럼 최고경영자(CEO) 적인 면이 강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한창일 때인 1994년에 총장이 됐을 때 저도 압력을 많이 받고 노력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잘하는 사람이 총장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둘 중 하나가 모자라도 훌륭한 총장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훨씬 어려운 자리가 됐습니다.”

―두 가지 역할이 상충되는 거 아닙니까.

“이제는 총장은 돌아가면서 적당히 할 자리가 아닙니다. 경영 측면을 간과하면 학교 발전이 더디고, 경영만 강조하다가는 학교 질서가 엉망이 됩니다. 총장은 투자의 우선순위를 알아야 합니다. 시대적인 흐름을 읽고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되고요. 하지만 학문을 경시하는 총장은 대학 총장이 아닙니다.”

안 총장은 1998년까지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지냈고 4년 만인 2002년에 총장에 재선임됐다.

―앞으로 대학 정보가 낱낱이 공개돼 총장들로서는 부담이 될 텐데요.

“정보 공개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평가를 받지 않으면 절대로 개혁이 불가능합니다. 창피한 점도 있겠지만 현실을 인식해야 발전할 수 있지요. 저도 한국외국어대와 다른 대학의 통계를 비교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고치려 노력합니다. 대학도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채워야 합니다. 공개 자체의 가치는 차치하고 그 대학이 사회적으로 평가받고 스스로 변화하고 새로운 학문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학생들이 가끔 묻습니다. 대학이란 무엇이냐고…. 저는 ‘자유’라고 대답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이 다른 것은 자유 하나라고. 이제는 너희들이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으면 마음껏 해도 된다고. 물론 자유에 따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하겠지만요. 이런 의미에서 대학에는 규제가 있으면 안 됩니다. 사상, 학문의 자유가 포괄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곳이 바로 대학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도 대학에 대해 규제를 많이 하고 있잖습니까.

“가장 큰 규제가 학생 선발에 관한 것인데요. 사실 이런 규제는 없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기여입학제 같은 것은 대학별로 갈등이 존재합니다. 엄청 득을 보는 대학이 있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대학도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 정서 역시 대학은 자기 실력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요. 이 때문에 저로서도 기여입학제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멀리 본다면 검토가 필요합니다. 소수의 기여자가 다수의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에 긍정적인 면이 큽니다.”

그는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으로서 대학 간 갈등과 입장차를 조정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대학은 제각각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양성인데 이를 획일적인 정책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제 소신입니다. 정부의 대학 정책으로 대학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학의 다양성을 최대한 키우고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홍성철 기자 sungchul@donga.com

▼안병만 총장은▼

△1941년 충북 괴산 출생

△1964년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졸업

△1974년 미국 플로리다대 정치학 박사

△1975년∼현재 한국외국어대 행정학과 교수

△1994∼1998년 한국외국어대 총장(제5대)

△2002년∼현재 한국외국어대 총장(제7대)

△2005년 3월 제5대 한국대학총장협회 회장 취임

:한국대학총장협회:

전국의 전현직 대학총장 400여 명이 회원이며 1995년 2월 발족했다. 사회의 도덕규범과 윤리관 정립을 위해 노력하며 중립적인 위치에서 교육 갈등의 중재자로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회장은 이사회에서 선출하며 임기는 4년이다. 박재규(朴在圭·전 통일부 장관) 경남대 총장, 이대순(李大淳) 전 경원대 총장, 송석구(宋錫球) 전 동국대 총장, 선우중호(鮮于仲皓) 전 서울대 총장이 이 단체의 회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