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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四. 흙먼지말아 일으키며

입력 | 2004-11-16 18:00:00

그림 박순철


“성이 비어 있는 듯해도 의혹이 많았는데, 선생께서 몸소 나서시어 이리 일러주시니 무어라 고마운 뜻을 드러내야 할지 알 수가 없소. 선생의 낯을 보아서라도 팽성의 군민은 터럭 하나 곡식 한 톨 다치는 일이 없을 것이오!”

그런 다음 한신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장군은 이제 여러 장수들과 제후들에게 통보하여 군사를 이끌고 팽성에 들되 지난번 우리가 진나라를 쳐부수고 함양(咸陽)으로 들 때의 예를 따르게 하시오. 백성들을 다치게 하거나 그 재물을 약탈하는 자는 목을 베고, 서초(西楚)의 부고(府庫)와 창름(倉(늠,름))을 함부로 터는 자도 엄히 벌하겠다 이르시오!”

하지만 그럴듯한 것은 그런 한왕의 엄명뿐이었다. 한신은 충실히 한왕의 뜻을 전했으나 팽성 안으로 들어간 여러 갈래의 제후군은 금세 눈이 뒤집혀 많지 않은 한군(漢軍)으로서는 통제할 수 없는 약탈자들로 변해버렸다.

고대 경제의 한 형태였던 약탈은 황제(黃帝) 이래로 순치되어온 의식에 힘입어 많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하(夏) 은(殷) 주(周) 삼대를 거친 그때까지도 여전히 전쟁의 한 관행으로 남아있었다. 통상 전리(戰利)란 이름으로 군사들에게 허용되는 약탈의 이익은 때로 전투에 훌륭한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특히 체계적인 급여제도를 갖추지 못한 유민군(流民軍)의 우두머리에게는 비정규 급여라고 해도 좋을 경제적인 반대급부의 의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제후군은 물론 규율이 엄한 한군 중에도 아직 유민군의 티를 벗지 못한 군사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약탈을 못하게 한다는 것은 약속된 급여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가 제후군에는 처음부터 세력이 큰 한왕이 얻게 될 전리만을 바라 끼어든 초적(草賊)이나 토비(土匪)도 적지 않았다.

제후군 사이에 묻어온 정치적 군사적 원한도 문제였다. 먼저 제(齊)나라에서 온 병사들이 패왕의 군대로부터 당한 분풀이로 사람을 마구 죽이고 불을 질렀다. 거기에 다시 관중(關中)에서 뽑혀온 병사들이 함양에서 항우의 군사들에게 당한 분풀이를 더해 팽성을 더욱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한왕은 처음 제후들을 불러 모아 어떻게든 사태를 바로잡아 보려했다. 그러나 제후들이 서로를 부추겨가며 은근히 힘을 합쳐 한왕에게 맞서려드니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엄벌로 군기(軍紀)를 세우기는커녕 거꾸로 그들의 눈치를 보며 달래야 했다. 거기다가 한왕 자신의 무책임하고 향락적인 기질이 보태져 팽성 안은 연일 제후들과의 술잔치로 흥청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한왕이 제후들과 술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항양(項襄)을 추격하러간 장수가 사람을 보내 알려왔다.

“항양은 제나라로 달아났지만 그가 패왕에게로 옮기려던 팽성의 재보와 미인은 모두 되찾았습니다. 내일이면 팽성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돌아온 재보와 미인이 다시 한왕을 그르쳤다. 패왕이 팽성에 쌓아두었던 재보는 진 시황제가 천하에서 긁어모은 것이었다. 그것들이 수십 대의 수레와 바리바리 마소에 실려 돌아오자 원래부터 재물에 욕심이 없지 않던 한왕의 입은 귀밑까지 찢어졌다. 대신 천하를 넘보게 된 뒤로 애써 키워온 절제와 극기의 미덕은 그대로 스러져 버렸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