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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문중양]과학관 전문 큐레이터가 없다

입력 | 2004-11-12 17:57:00


2006년쯤에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새 국립과학관이 경기 과천시에 세워진다. 한국의 과학기술사를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너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새 과학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체험하는(hands-on) 과학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마음으로 느끼는(feels-on) 과학관이어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진 바 있다.

과학문화의 테마파크로서 레저를 즐기듯이 대중적인 문화활동의 형태로 누구나 와서 과학을 즐길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이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추진기획단의 전시전문위원회 민간위원으로 건설과정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서 아쉬움이 많다. 새 국립과학관 건설 추진과정에서 논의되지 못한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부족함이 없는 전시 내용을 채워 개관하는 것 못지않게 개관 이후의 운영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다. 이상적인 과학관의 운영은 전시와 연구, 그리고 교육이라는 3박자가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

전시 내용은 정기적으로 끊임없이 바꿔야 하고, 모든 계층과 연령층의 국민이 과학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계속적인 전시 시나리오와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요구된다. 특히 과학기술학 전문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학기술학 분야는 과학의 역사적 이해, 과학의 사회 문화적 함의, 과학의 대중적 이해 등을 연구하는 분야로서 이미 선진국의 과학관에서는 큐레이터로서 연구는 물론이고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존 과학관에는 이러한 분야의 전문인력이 거의 전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일반 박물관이나 민속박물관에 적합한 분야의 연구인력이 그대로 과학관에 배치될 수밖에 없었던 그동안의 관행 탓이 크다.

10월에는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에서 ‘겨레과학기술 체험 시연전’이 열렸다. 주된 내용은 민중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수레, 대장간, 금속상감, 도자상감, 한지, 천연염색 등의 제작기술과 작품들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기획의 의도가 우리 전통 과학기술의 우수성을 보여 준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위와 같은 분야의 ‘생활 속의 슬기로운 지혜’가 우리의 자랑스러운 전통 과학기술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말 중요한 우리의 ‘전통 과학기술’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졌다는 데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에는 별자리를 보면서 우주를 논하고 심오한 사색을 펼쳤던 과학은 없었단 말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역사 속의 진정한 과학문화를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도록 개발할 전문인력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과학적인 옹기를 만들어 사용하는 슬기로운 지혜를 지녔을 뿐 아니라, 서구의 과학자들처럼 자연 속의 박물을 살피고, 우주를 논하는 철학적 사색을 즐겼다. 유럽의 천문학보다 우수한 천문역법이 있었고, 그러한 역법에 기반을 둔 정확한 달력과 시계는 합리적인 생활 패턴의 큰 배경이었다.

과학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서 과학관을 운영해 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전문 연구인력이 필요한지, 그리고 그 확보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관심을 갖고 논의해야 할 때다.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개관식 날만 찬사를 받는 것이 아니라 몇 년 후 좋은 평가를 받는 진정한 과학관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문중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