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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자비]초심으로 돌아가라

입력 | 2004-11-11 18:24:00


붉게 물들었던 오대산 단풍도 벌써 다 떨어지고 산중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오늘은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제2기생의 삭발이 있어서 아침 일찍 삭발식에 동참했다. 한 달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삭발염의(削髮染衣·출가해 머리를 깎고 먹물 들인 옷을 입음)하고 수행자 생활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월정사 단기출가학교는 이제 꽤 알려진 편이라 경쟁이 치열하다.

막 출가한 행자의 긴 머리를 삭발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긴 머리를 한 줌씩 잘라내면서 나는 내 첫 삭발 때의 간절했던 그 ‘첫 마음’을 떠올렸다.

가끔 세상소식을 접해보면 온 나라가 서로 ‘내가 잘했니, 네가 못했니’ 하며 국민들 살림살이가 어떻게 되든지, 사회나 직장 이웃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 풍선은 불어야 커진다. 그러나 멈출 때를 알아야 한다. 옆 사람보다 조금 더 키우려다가는 결국 터져버려 아예 못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소유하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밟히기도 하고, 때로는 밟기도 하면서. 기쁨도 불평도 내 마음자리에서 나오는 것이지 누구를 탓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결국 나에게 있다. 다만 기쁨은 첫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 데 반해 불평은 묵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누구나 삶의 큰 굽이를 돌아설 때마다 간절한 마음을 낸다.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계획표를 짜고, 어렵게 구한 직장에 첫 출근할 때는 어떤 일이라도 해낼 것처럼 마음이 순수하고 의지 또한 강하다.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세상사가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첫 마음’으로 돌아갈 일이다. 정치인은 선거유세 때의 그 간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기업가는 처음 공장을 열었을 때의 기쁜 마음으로 노동자와 고객을 맞이해야 한다. 오랜 시간을 병고에 시달리다가 나은 날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보고, 가장 힘들 때 부처님 앞에 섰을 때의 간절했던 첫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절에 다닌다면, 참고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이 사바세계도 살아볼 만한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