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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의 서울]서대문 형무소와 영화 ‘광복절 특사’

입력 | 2004-10-28 18:13:00

오랜 세월 ‘감옥’의 대명사였던 ‘서대문형무소’는 1987년 이후 선열들의 독립 정신을 기리는 역사관으로 조성돼 ‘도심 속의 열린 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영화 ‘광복절 특사’의 교도소 장면(아래 사진)들도 실제 운영 중인 교도소가 아니라 이 역사관에서 촬영됐다. 장강명기자


고참 죄수 무석(차승원)과 재필(설경구)은 6년 동안 숟가락으로 판 땅굴을 통해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다. 그러나 탈옥 첫날 펼쳐 본 조간신문에서 자신들이 다음 날 있을 광복절 특사 대상이라는 기사를 읽게 된다.

특사 대상이었다는 걸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느냐며 교도소에 항의전화를 걸자 몸이 단 교도소 보안과장은 “오늘 중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탈옥을 눈감아주겠다”고 약속한다. 그사이 교도소에서는 갑작스러운 국회의원들의 시찰을 앞두고 소장이 수감자들에게 밥 먹을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교도소 도색작업과 조경작업을 시키는 바람에 폭동이 일어나 버린다.

2002년 개봉한 요절복통 코미디 영화 ‘광복절 특사’는 전국에서 31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에서 주연들이 돌아가며 부른 강애리자의 ‘분홍립스틱’은 이후 노래방 애창곡이 되기도 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교도소 장면들은 실제 운영 중인 교도소가 아니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촬영됐다. 법무부가 보안문제 때문에 영화 제작진에 교정시설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 이는 ‘교도소 월드컵’ 등 그동안 간간이 나온 다른 교도소 소재 영화들도 마찬가지다. 내년 초에 개봉할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가 실제 교도소 내부에서 촬영한 첫 한국 영화가 될 전망이다.

사실 ‘서대문형무소’란 단어는 아주 오랜 세월 우리 사회에서 ‘감옥’을 상징하는 이름 그 자체로 통용됐다. 경성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 이름은 계속 바뀌었지만 이곳은 무려 80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쇠창살 사이로 조각난 파란 하늘을 보며 한숨 지어 온 ‘절망의 장소’였다.

일제가 독립문 옆에 감옥을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한일병합을 3년 앞두고 대규모 감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제는 당시 전국 모든 감옥의 총 수용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감옥을 독립문 옆에 지었다. 1908년 준공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돼 고문을 받으며 처형되거나 옥사했다.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 곳도 이곳 지하감옥의 독방이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경기 의왕시로 옮겨 간 뒤 형무소와 그 주변은 독립공원으로 조성됐다. 형무소는 역사관이 됐고 옥사 3개동과 사형장은 사적으로 지정됐다.

독립공원은 이제 ‘과거사’의 무게를 부담스러워 하지만 않는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둘러보기 좋은 도심 속 근린공원이다. 5만5300여평의 공원 내에는 역사관과 독립문, 독립선언기념탑, 순국선열추념탑 등이 있고 느티나무와 은행나무가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요즘은 느티나무에 단풍이 들기 시작해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역사관과 썩 잘 어울린다. 연인이라면 역사관 뒷길을 꼭 한번 걸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쪽은 나무 언덕이, 또 다른 한쪽은 담쟁이덩굴이 가득한 형무소의 색 바랜 담장이 있는 예쁜 길이다.

독립공원은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지만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입장료를 받는다. 어른 1500원, 오전 9시반∼오후 6시(11월∼다음해 2월은 오후 5시) 개관, 매주 월요일 휴관. 옛 보안과 청사 지하에는 고문실이 있는데 전시물과 비명소리 방송이 너무 섬뜩해 유아가 있는 가족에겐 권하고 싶지 않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 5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

장강명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