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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류지태]소모적 논쟁 이젠 끝내자

입력 | 2004-10-22 18:02:00


준비 안 된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이 위헌 결정을 받았다. 관습헌법이라는 위헌 결정의 논거에 대해서는 학문적 논쟁이 제기될 수 있지만, 확실한 것은 무리한 내용의 입법은 언제라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의해 효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권의 명운을 걸고, 국회의 다수 의사로 결정하였다고 해도 ‘국민적 합의’를 무시한 권력 행사는 정당성을 갖지 못함을 이번 헌재 결정은 보여주고 있다. 몽테뉴의 말처럼 허겁지겁 먹는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칠 뿐만 아니라 식사의 즐거움을 망치고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인 것이다.

▼수도이전 위헌결정 수용해야▼

헌재 결정은 정치적 사안을 사법적으로 해결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정치적 갈등을 야기하는 사안을 헌법적 법리 아래에서 심리해 종국적으로는 국민적 통합을 의도하는 것이 헌재 결정의 장점이다. 나름대로 충분히 헌법 법리 아래에서 고민한 헌재 결정에 대해 ‘헌재 재판관 탄핵’이나 ‘사법 독재’ 운운하는 등의 화풀이성 대응은 이성적이지 못한 태도다. 자신의 법률적 무지를 돌아보지 않고 ‘관습헌법은 논거를 들어 보지도 못했다’고 비난하는 법률 전문가 출신 정치인의 발언도 가볍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다.

탄핵 결정에 이은 이번 위헌 결정으로 잘못된 입법에 대한 헌재의 통제체제는 법적 안정성을 담보하는 확실한 보장수단으로 자리 잡게 됐으며, 앞으로 우리 법치주의 체제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될 전망이다.

정치권은 헌재의 위헌 결정을 지난 탄핵 결정 때와 마찬가지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한 이번 위헌 결정이 나오게 된 원인에 대해 진지한 반성을 해야 하며, 그동안 분열됐던 국민 의사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특정 지역의 유권자 표만을 의식한 짧은 생각이 이와 같은 위헌적인 법률을 제정한 원인이었다는 비난에 대해 정치권은 여야를 불문하고 그 정치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열려 있는 자세로 여론의 비판을 제대로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안으로 국민투표 회부 논의도 제기되지만, 이는 또 다른 차원의 국민적 갈등을 야기할 뿐이므로 자제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지금이 국민투표에 의해 국론을 결정할 때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신행정수도 건설은 처음부터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이념과는 맞지 않은 것이었다. 특정 지역에 행정수도가 이전되는 분권적 효과는 당해 지역에 한정될 뿐이며, 다른 지역에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지역 차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제 행정수도 이전이 법리상 어려워진 만큼 다른 방법으로 지방분권의 이념을 구현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특정 지역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하는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국민화합 이룰 비전 제시할때▼

수출이 2000억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미래를 대비한 기업들의 착실한 준비와 영업 전략이 안정적 수출 신장에 크게 기여했음은 자명하다. 미국 대선 후보들의 논쟁도 미래사회를 대비하는 정책 대결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의료보험 개혁이나 연금 개혁안에 대한 정책 대결, 세계 정치에 대한 정책 대결 등이 그들의 논쟁거리라는 사실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앞서 가는 나라의 앞서 가는 정책들이 이념 논쟁으로 연일 정신없는 우리의 현실을 초라하게 만드는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쟁은 이번 위헌 결정으로 종식되기를 희망한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인지 진지하게 돌아보아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비전 있는 정책의 제시가 필요한 때다.

류지태 고려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