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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이후…무너진 중산층]위기의 중하층

입력 | 2004-09-07 18:31:00


특히 비정규직(61명)과 자영업자(17명)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들의 소득은 경기에 따라 진폭이 심하다. 더욱이 비정규직은 회사가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퇴출될 수 있다. 지금처럼 불황이 계속되면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한 단계 더 미끄러질 위기에 있다.

그나마 정규직에 취직한 27명은 은행에 다닐 때보다 임금은 낮지만 희망의 싹을 키워 가고 있다.

▽미끄럼틀 오르기=서울 시내 지점의 과장으로 일하다 퇴출 당한 박모씨(47). 지난 6년의 세월은 그의 성격과 외모까지 바꿔 놓았다. 도전적인 성격은 폐쇄적이고 음울하게 변했다. 180cm의 키가 믿기지 않을 만큼 등이 굽었고 머리는 백발로 변했다.

이혼과 재결합, 부부가 힘을 모아 개업한 강원도 토속음식점과 보습학원의 잇따른 실패, 스트레스 때문에 갑상샘암에 걸린 채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는 아내, 대학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버는 아들과 딸, 가출한 중3짜리 막내….

이씨는 한 달 전부터 채권추심회사에서 연체 카드회원에게 빚을 독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연체자가 갚는 빚의 40%는 그의 몫. 요즘 한 달 소득은 150만원가량이다. “신용불량자가 신용불량자를 괴롭히는 일이 너무 괴롭지만 아내를 생각하며 참습니다.”

비정규직 중 박씨처럼 채권추심 업무를 하는 사람이 24명으로 가장 많고 중소기업 12명, 제2금융권 6명 등이다. 이들은 자영업이나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뒤 비정규직으로 건너오거나 퇴출 이후 줄곧 직장을 옮겨 다닌 사람이 대부분이다.

비정규직은 소득도 낮지만 직장의 안정성이 떨어진다. 이들은 6년간 3∼6회 직장을 바꾸었다. 정모씨(49)의 경우 현재 일하는 카드회사가 10번째 직장이다.

퇴출 후 4번째 직장인 H저축은행에서 6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는 박모씨(49)는 “삶의 의지를 꺾는 것은 현실의 궁핍함보다 열심히 살아도 기대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가파른 미끄럼틀을 오르는 느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부도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개인사업자들=중하층에 속한 자영업자들은 부동산컨설팅, 공인중개사, 농산물 유통, 식당, 골프숍, 환전소 등을 하고 있다. 개인사업자들은 디자인 사무실이나 중소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본인은 환전소, 부인은 커피숍을 하면서 서로 자는 얼굴밖에 못 볼 정도로 바쁜 임모씨(46) 부부. 은행 재직시절 술에 취하면 “2차는 내가 쏜다”며 동료들을 끌고 갔던 그. 요즘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혼자 술을 마실 정도로 ‘짠돌이’가 됐다. 하지만 쌓이는 것은 부채뿐이다.

임씨는 “안간힘을 쓰지만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몸무게가 갑자기 6kg가 빠질 정도로 이상 신호가 왔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대신 가족들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2개 가입했다.

자영업자나 개인사업자들은 대부분 “퇴출 직후보다 요즘이 더 어렵다”고 호소했다. 농산물 유통업을 하는 이모씨(36)는 “밑바닥 인생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일해서 이제 농산물유통 전문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수준이 됐는데 불황이 닥쳤다”며 “아무래도 2년간은 어려움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대 출신으로 퇴출 후 고시공부, 보험설계사, 학원 강사를 거쳐 금년 5월부터 지방 중소도시에서 보습학원을 운영 중인 이모씨(38)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던 학벌까지 팔아 학원을 열었는데 예상보다 매출이 떨어진다”며 “집사람 이름으로 은행에서 4000만원을 대출받아 어렵게 연 학원인 만큼 부담이 더 크다”고 말했다.

▽희망의 싹을 키우는 정규직=중하층에서 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는 27명은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에 비해 사정이 훨씬 낫다. 이들은 주로 중소기업이나 제2금융권에서 일하며 27명의 평균연봉도 3280만원으로 가장 높다. 비정규직 67명의 평균소득은 2920만원이며 자영업이나 소규모 회사를 운영하는 17명의 평균연봉은 2960만원.

퇴출 직후 바로 정규직으로 옮겨 간 사람은 1명뿐이며 대부분은 비정규직을 떠돌다가 정규직을 찾아서 안착하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실패한 후 지인들의 도움으로 직장을 잡았다.

2002년 말부터 지방의 한 신용협동조합에서 차장으로 일하는 김모씨(37)는 취재팀과 만나 “지금의 연봉 3000만원도 정말 만족한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퇴출 후 아파트를 처분해 K대 앞에서 레스토랑을 하다가 문을 닫았다. 재기하기 위해 시작한 옷가게도 장사가 안돼 자본금을 모두 날리고 결국 홀로 사는 노모 집으로 들어갔다.

김씨는 “계속 장사를 했다면 다른 동료들처럼 회복할 수 없는 처지가 됐을 텐데 천우신조로 안정적인 직장을 얻어 행복하다”며 “더 어렵게 살던 시절을 기억하며 차근차근 한 발짝씩 나아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외식하자 조르는 철부지 아들에게 대리운전 나간다고 어찌 말하겠나"▼

동화은행 퇴출자들은 지난 6년간 ‘가장 괴로웠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자식들과 관련된 일화를 꼽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대리운전으로 월 100만원씩을 버는 김모씨(36)는 “‘베니건스’(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자고 조르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에게 ‘부대찌개가 더 맛있으니 그리로 가자’고 말할 때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했다.

고려대 공대를 졸업하고 전산부에 근무했던 김씨는 얼마 전까지 사무실 전산망을 구축해 주는 프리랜서로 일했지만 일거리가 워낙 없어지자 운전대를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저녁에 출근할 때 자녀들에게는 “개인연구소에서 밤샘 작업 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퇴출 당시 과장이었던 박모씨(42)는 “지역의료 보험료가 연체돼 애가 아픈데도 병원에 가지 못했을 때 내 자신이 너무 한심스러웠다”고 말했다.

빚보증에 얽힌 금전관계 때문에 친했던 은행 동료와 사이가 멀어지거나 동업, 창업과정에서 ‘배신’이나 ‘사기’를 당했던 순간을 꼽은 이들도 적지 않다.

서울 시내 지점장 출신으로 실직상태인 김모씨(54)는 “퇴출 후 직장 동료들과 채권추심회사를 차렸다가 배신을 당해 금전적 손해가 컸다. 그땐 총이 있으면 다 쏴 죽이고 나도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놓았다.

‘퇴출은행원은 왠지 부도덕할 것 같다’라는 이유로 재취업 기회를 박탈당했을 때 “모멸감을 느꼈다”고 답한 이들도 상당수다.

40대 중반 이상에서는 “경조사 때가 가장 서럽다”는 응답이 많이 나왔다. 지점장 출신인 이모씨(57·공인중개사)는 “5월 초 동료 부친 상가에 갔더니 문상객이 5명도 되지 않아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며 “문득 올해 가을 예정인 내 딸 결혼식 때도 올 하객들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자 눈물이 쏟아졌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답한 사람도 많다. 현재 실업상태인 이모씨(42)는 “퇴출 당시는 그래도 젊은 나이였고, ‘어떻게 잘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차린 식당이 망하고, 연금 보험 적금을 깨고 담보대출도 한계까지 쓴 지금은 정말 견뎌내기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중하층 105명의 현재 상황

 비정규직(61명)정규직(27명)자영업 및 개인사업(17명)당시 직책행원 14, 대리 14, 과장 13, 차장 11, 지점장 9행원 10, 대리 7, 과장 5, 차장 4, 지점장 1행원 1, 대리 5, 과장 4, 차장 4, 지점장 36년 전 연평균 소득 4900만원4730만원5120만원현재 연평균 소득2920만원3280만원2960만원

현재 직업채권추심 24, 중소기업 12, 보험설계사 2, 부동산컨설팅 2, 전산 프리랜서 1, 자산관리공사 4, 신용회복위원회 3, 예금보험공사 7, 제2금융권 6중소업체 10, 제2금융권 9, 전산직 3, 서비스업 2, 회계사 1, 공무원 1, 카드사 1IT벤처, 보습학원, 부동산컨설팅, 전산소모품 유통, 농수산물 유통, 제2금융권, 환전소, 구인구직업, 식당, 골프도구점, 이동통신 대리점, 전문지현재의 삶이 우울하거나 절망적이다56명(91.8%)17명(63.0%)12명(70.6%)평균 연령44.5세41.7세47.5세이직 횟수평균 3.3회2.7회2.1회설문 대상자 229명 전체의 평균연령 43.7세, 중하층 105명의 평균연령 44.2세.

▼특별취재팀▼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상훈기자 sanhkim@donga.com

이철용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