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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오세정/기초과학 이대론 안된다

입력 | 2004-07-29 19:25:00


지난주 포항공대에서 열린 제35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 대회에서 한국대표단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 73개국이 참여한 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물리올림피아드를 주최한 한국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또한 최종 성적에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함으로써 우리 과학영재들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며칠 전에는 독일에서 개최된 국제화학올림피아드에서도 한국대표단이 준우승을 차지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열린 생물과 수학분야의 국제올림피아드에서는 한국이 5위와 12위를 차지했지만, 어쨌든 한국 젊은 두뇌들의 과학적 능력은 세계 최상위권임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과학올림피아드가 남긴 과제▼

이제는 이처럼 우수한 두뇌들이 세계적인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국내 여건을 갖추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국내 대학의 여러 문제점과 이공계 기피현상 때문에 그리 낙관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의 경우는 응용과학보다도 더욱 상황이 어렵다. 이러한 현실 때문인지 과거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수상자들을 보면 전공을 응용분야나 심지어 의학으로 바꾼 경우가 적지 않다. 하기는 한국의 기초과학계가 처한 여건을 살펴보면 이들의 선택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국가연구개발예산의 25%를 기초연구에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기초연구란 대학에서 수행되는 연구를 통칭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정부 기초연구예산의 대부분은 공학이나 의약학 등 응용분야에 투입되고 수학·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등 순수기초분야에 투자되는 비용은 4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이러한 경향은 해가 갈수록 심화되어 대학연구 지원을 주로 담당하는 한국과학재단의 경우도 수학이나 물리학 등 순수기초분야의 연구비 비중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물론 응용분야의 연구도 중요하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 보이는 성과만을 강조하면 창의적이고 응용기술의 원천이 되는 기초과학의 연구 성과는 얻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초과학이 쇠퇴하면 중고교와 대학의 과학교육에도 악영향이 미친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번 전국적으로 실시한 모의수능 결과를 보면, 고등학교의 과학탐구 영역에서 현대 과학적 탐구능력의 기본이 되는 물리과목을 선택하는 학생은 많지 않았고 특히 물리Ⅱ를 선택한 학생은 전체 학생의 5%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공과대학의 전자공학과나 기계공학과에도 물리를 공부하지 않고 입학하는 학생이 비일비재하고, 이는 곧 공과대학 교육의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일본 국제과학진흥재단 조사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의 이공계 대학생 중 한국 대학생의 기초학력이 가장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현대는 기술이 매우 빨리 발전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탄탄한 기초지식을 가지고 사회에 진출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낙오되기 십상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 연구에 따르면 지금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일생 동안 평균 5번 이상 직업을 바꿀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기에 미국 공과대학에서는 기술이 발전해도 졸업생들이 곧 습득해 따라갈 수 있도록 기초과학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기초과학 교육이 고등학교 때부터 점점 부실해지고 있으니, 이러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인력들이 과연 지식기반사회의 치열한 세계적 경쟁을 견뎌낼 수 있을지 우려된다.

▼지식기반사회 낙오자 양산▼

국제과학올림피아드는 스포츠로 치면 청소년대회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대회 우승자가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급선무지만, 이와 더불어 장기적인 저변 확대를 위해 일반 국민의 체력 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오세정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교수·물리학 sjoh@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