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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박성원/‘金씨 신상’ 성급했던 보도

입력 | 2004-06-23 18:43:00


“사태가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부도 문제지만 언론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닙니까.”

이라크에서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됐던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金鮮一·34)씨가 23일 오전 끝내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흘러나오자 기자가 타고 가던 택시의 운전사는 대뜸 목청을 높였다.

김씨가 납치범들이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는 미군에 군수물자를 납품하는 회사의 직원이며, 목사 지망생으로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지하드’(성전)의 대상인 기독교 전파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이 신문과 방송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데 대한 질타였다.

실제로 20일 김씨의 피랍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그의 신상에 관한 갖가지 상세한 내용이 여과 없이 신문지면과 방송화면을 통해 보도됐다.

일본 유력일간지의 한 서울 주재 특파원은 “만일 미군 군납업체 직원이고 목사 지망생인 일본 사람이 이라크에서 납치됐다면 일본 언론은 그의 인적 사항을 결코 보도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올 4월 피랍 1주일 만에 무사히 풀려났던 일본인 인질사건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당시 일본 언론들은 오히려 “납치범들을 자극해 석방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하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우리 언론도 대부분 자체 윤리강령이나 보도준칙 등에 ‘납치 유괴 인질 사건에서 피해자의 위험을 가중하거나 해를 입힐지도 모를 보도는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사건에서는 일본과 대조적인 우리 언론의 보도태도 때문에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소중한 목숨이 희생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국제화시대를 맞아 외국에서 발생하는 납치 범죄 등에 우리 국민들이 노출될 확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혹시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선정주의적 보도 때문에 국민의 생명에 위해가 닥치는 일이 없도록 우리 언론도 자기규제의 룰을 익혀가야 할 것 같다.

박성원 정치부 기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