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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류재갑/한미관계 ‘역사의 교훈’ 잊었나

입력 | 2004-06-13 18:47:00


“자유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이 나라는 그들이 예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나라와 결코 만나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방위하기 위해 그들 자신의 나라의 부름에 응답한 무명의 아들들과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

이 인용문은 미국 워싱턴시의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새겨져 있는 비문의 내용이다. 미국의 병사들은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에 ‘아시아의 한 모퉁이에 붙어 있는 이상한 나라’에 와서 어느 이름 모르는 골짜기에 그들의 영혼을 묻었다. 그 수만도 5만명을 넘는다. 미군 고급장교들의 아들들도 142명이나 참전했고, 그중 35명(25%)이 전사했다.

▼한국에 묻힌 수많은 미군 병사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위로하고 기려야 하는 넋은 우리의 호국선열들뿐만이 아니다. 유엔군도 있고 미군도 있다. 남의 나라와 남의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이들의 영혼도 함께 기려야 한다는 얘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민족은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으로부터 입은 은혜를 쉽게 잊어버리고 배신의 감정을 토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 역사의 준엄한 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이 나라는 그동안 970여 차례의 외침을 당했지만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나라를 잃거나 백성이 도륙당하는 굴욕의 수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 역사상 가장 대규모이고 비참했던 6·25전쟁에서는 유엔과 미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낙동강전선 다부동에서의 사력을 다한 혈전 덕분에 대구와 부산을 지키는 최후 방어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 워커 대장은 기진맥진한 미군병사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여기서 더 물러서면 캘리포니아로 가든지 푸른 바다 속으로 가야 한다. 우리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앞으로 나아가자.” 그렇게 해서 서울을 탈환하고 38선을 회복할 수 있었다.

미국은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 및 38선 돌파 후 북진작전 시에도 한국군의 자존심을 생각해서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미군보다 도보로 진군하는 한국군 사단이 평양으로 먼저 진입할 수 있도록 양보했다. 위험한 적의 총부리 앞에서도 그들은 항상 앞서 나가면서 한국군에게 뒤따라오라고 했다. 이처럼 한미관계는 피의 능선에서 싹트고 철의 고지에서 돈독해졌다.

전쟁이 끝나자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이후에도 미국의 도움을 제도화하기 위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을 추진했다. 이 대통령은 ‘정전 결사반대’, ‘북진통일’, ‘반공포로 석방’ 등 죽음을 각오한 위기일발의 ‘옥쇄전략’을 통해 미국과 방위조약을 맺고자 했다.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미국은 이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상시대비(常時對備) 작전’까지 계획했다. 천신만고 끝에, 그래도 3년 동안 전쟁터에서 친해진 미국의 고위 장성 등을 비롯한 조야의 많은 친구들 덕분에 미국 정부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해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 조약은 미국이 당시의 소련이나 중공을 봉쇄하기 위한 기지획득 차원에서 한국에 압력을 가해 맺은 것이 아니라 한국이 사력을 다해 미국과 맺은 특수조약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은 주일미군이나 주독미군과 달리 우리가 ‘초청한’ 군대다.

▼주한미군은 우리가 ‘초청한’ 군대▼

이 나라 젊은이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부르짖고 있는 외교적 ‘자주’는 우리가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의 강력한 뒷받침을 받으면서 미국과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은혜를 모르는 민족은 그 터전을 지킬 자질이 없는 민족이다. 지금 이라크전쟁을 반대하고 있는 프랑스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는 은혜를 잊지 않는다. 어렵게 쟁취한 평화와 자유를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은혜를 은혜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 참다운 ‘자주’와 나라간의 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이 진리이고 역사의 교훈이다. “진리를 거역하면 민족도 망하고 민중도 망한다.”(이기백 교수의 유훈)

류재갑 경기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