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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기각]盧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가고 싶다”

입력 | 2004-05-14 22:20:00


63일 만에 대통령 직무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화려한 복귀보다는 조용하고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이날 오전 청와대 관저에서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함께 TV로 헌법재판소의 결정 선고를 지켜본 노 대통령은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던 중 청와대 경내를 관광하러 온 시민들과 마주쳤을 때도 짤막하게 “감사하다”고만 인사했다.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들과 점심식사를 한 본관 인왕실에 들어설 때는 참모들의 박수를 받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잘 견뎌줘 고맙다”면서 “이번처럼 각별히 절제했던 자세로 해 나가면 더 큰일도 해낼 것”이라고 ‘절제’를 강조했다.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서도 결정문에서 선거중립의무 위반을 지적하며 준엄한 경고성 메시지를 담은 데 대해선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한 핵심관계자는 “헌재 결정 내용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매주 화요일 열리는 국무회의도 예정대로 18일에 열기로 하는 등 청와대는 서두르는 모습을 피하려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은 12일 저녁 참모진에게 “결혼식장에 가보면 신부가 입장할 때 하례객이 모두 고개를 빼들고 기다리곤 한다”며 “다들 대통령이 어떻게 복귀하는지 앞문만 쳐다볼 텐데 나는 조용히 뒷문으로 입장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탄핵사건 주무 수석비서관이자 젊은 시절 노 대통령과 사법시험 공부를 함께 했던 인연으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해 온 박정규(朴正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탄핵사건 기간 내내 속을 끓였다.

민정수석비서관에 부임한 지 꼭 한 달째인 3월 12일 탄핵소추라는 날벼락을 맞은 박 수석은 평소 술자리라면 마다하지 않는 애주가이지만 “국상(國喪) 중에 행동거지를 함부로 할 수 없다”며 스스로 금주령을 내렸고, 매일 오후 10시까지 사무실을 지키며 헌재의 움직임을 파악해 왔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