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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칼럼]누가 탄핵을 부추겼는가

입력 | 2004-03-22 18:52:00


국민의 70%가 야당의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수의 국민은 대통령이 야당의 사과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 의회의 탄핵이 있기 직전 대변인을 통해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크게 보아 ‘40%의 모순’이 존재한다. 국민의 40%가 탄핵에는 반대하고 사과에는 찬성하는 엇갈린 선택을 한 것이다. 나머지 60%는 절반씩 나뉘어 30%는 사과 반대-탄핵 반대, 30%는 사과 요구-탄핵 찬성의 일관성을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국민 40%의 ‘중심 意思’ ▼

물론 가변적인 여론조사에 근거한 이런 해석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오차범위 이상의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40%의 모순’이 주목해야 할 키워드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40%야말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중간세력이자 공동체의 중심 의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의 사태는 대통령과 야당이 40%의 중심 의사를 무시한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근본 해법은 40%의 중심 의사를 따르는 것이다. 야당 일각에서 ‘대통령 사과와 탄핵안 철회’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미 친노(親盧)-반노(反盧), 민주-반(反)민주의 이분구도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어떤 타협도 ‘두 번 죽는 것’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탄핵보다 두려운 현상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내용이 어떠하든 30%씩의 양측 세력이 또다시 40%의 중심 세력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양측은 어떤 결정에도 쉽사리 승복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이럴 때 40%의 중심 의사는 오히려 배제될 위험성이 크다. 치유하기 힘든 갈등과 분열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동아일보’가 사설을 통해 일관되게 ‘양비론(兩非論)의 모순’을 견지한 것도 40%의 중심 의사를 지켜 내기 위해서였다.

본보 사설은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호소한 대통령의 방송클럽 회견 직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을 공식 거론했을 때 ‘탄핵 사태가 온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정치공세 차원에서라도 탄핵 소리가 쉽게 나와서는 안 된다’(2004년 2월 26일자)고 지적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탄핵과 같은 불행한 사태를 피하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준수’ 요청을 존중할 것을 당부했다(3월 4일자).

그러나 청와대는 사실상 선관위의 결정을 무시했고 야당은 탄핵 발의의 강도를 높였다. 이에 본보 사설은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사실이 탄핵 발의가 될 만큼 중한 것인가’라며 다시 야당의 자제를 요구하는 한편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에 대해) 국민에게 즉각 사과하고 야당은 탄핵을 거둬들여야 한다’(3월 6일자)고 강조했다.

그 뒤에도 본보 사설은 거듭 ‘대통령 사과와 탄핵안 철회’를 요구했다(3월 10, 11일자). 그러나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고 야당은 탄핵안 발의로 맞섰다. 본보는 끝내 탄핵안 처리에 이른 현실을 개탄해야 했다(3월 12일자 ‘누구를 위한 정면승부인가’).

그런데 국회의 탄핵안 가결이 있고 반대 여론이 높게 나타나자 일부 논자들은 ‘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이 ‘수구 야당의 대통령 탄핵’을 부추겼다며 비난하고 나섰다. 심지어 야당에 탄핵 표결을 서두르라고 재촉했다는 것이다. 그러고서도 책임질 줄 모른다며 준엄하게 질책하기까지 한다.

▼누가 분열을 부추기나 ▼

신문은 사설을 통해 사회적 의제(議題)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본보가 대통령 탄핵을 부추겼다는 비난은 논거는 없이 편견에 사로잡힌 일방적 주장일 수밖에 없다. 개별 신문의 의제 설정이나 편집 방향 등을 평가하는 것은 모두의 자유이다. 그러나 근거 없는 무책임한 비판은 국민 40%의 중심 의사를 무시하고 분열과 반목을 부추기는 선동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분열의 언설(言說)’이 횡행하는 분위기야말로 탄핵보다 두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