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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불임인가 피임인가…문학誌 공모 ‘당선자 없음’ 속출

입력 | 2004-03-08 18:56:00

올 1월 문학수첩 문학상 본심을 심사하고 있는 조정래(오른쪽), 권영민(가운데) 최원식 씨. 조씨는 “수상자를 내지 말자는데 모두 쉽게 동의했지만 첫회 공모라 아쉬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문학수첩


“저급 작가 양산(量産)을 막기 위한 문학적 피임인가, 아니면 문학계에 불임시대가 찾아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좋지 못한 징후인가?”

아직 데뷔하지 않았거나, 갓 데뷔한 신진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 계간지들의 작품 공모가 최근 잇따라 ‘당선자 없음’을 선언하자 문학계 내부에서 나오는 질문들이다.

계간 ‘문학과 사회’ ‘문학수첩’ 봄호는 각각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3개 부문)과 ‘문학수첩 문학상’(2개 부문) 등 총 5개 부문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이에 앞서 계간 ‘문학동네’의 지난해 겨울호도 제9회 ‘문학동네 작가상’의 당선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이 상은 무명시절 은희경 전경린 씨를 수상자로 뽑아 이들이 작가로서 지명도를 높이는데 기여한 장편소설 공모. 하지만 최근 4년간 3년 동안이나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신진 대상의 여러 문학상이 심사위원들의 의견대립이나, 응모작들의 수준 미달 때문에 당선자를 내지 못한 경우는 간간히 있었지만 이처럼 무더기로 ‘당선작 없음’을 선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계간 ‘문학수첩’이 창간 후 첫 공모한 ‘문학수첩 문학상’은 장편소설과 장편동화 어느 쪽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다. 장편소설 본심을 맡았던 작가 조정래 씨(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는 “예심을 거쳐 6편이 올라왔지만 모두 조금씩 모자랐다”며 “심사장에 나온 권영민 최원식 교수도 생각이 똑같아 본심이 쉽게 끝나버렸다”고 말했다.

계간 ‘문학과 사회’의 경우 2002년 가을의 제2회 공모에서 시 소설 평론 3개 부문 모두 당선자를 내지 못한 뒤 당초 반년마다 하기로 한 공모를 1년 주기로 바꾸었지만 최근의 4회 공모에서도 당선자를 가려내지 못했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평론가 김동식 씨는 “응모작의 전반적인 수준이 어떻다하더라도 '눈에 확 들어오는 한 편’만 있으면 되는데, 그 한 편이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진단은 ‘불임론’과 ‘피임론’으로 나뉜다. 문학동네 출판사의 강태형 사장(시인)은 “최근 5년간은 문학계가 사실상 ‘죽었다’고 할 만 하다”며 “지난 15년간 ‘서서히 물이 말라왔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비관론을 펼쳤다. 그는 특히 “최근 몇 년 새 문예창작과가 무더기로 생기면서 응모작이 양적으로 늘고, 기본기를 갖춘 작품들도 많아졌지만 확 밀어붙이는 패기나 실험성을 가진 작품은 오히려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강 사장은 “문화산업적으로 보더라도 문학은 영화 뮤지컬 등에 이야기의 틀을 제공하는 ‘원천 기술’”이라며 “문학에 대한 새로운 지원과 관심이 끊길 경우 다른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조정래씨는 “최근 몇 년간 수작(秀作)이 없었다는 평가에 반대한다”며 “신경숙의 ‘외딴방’, 공지영의 ‘고등어’ 등은 격찬 받을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계에는 주기적으로 ‘움츠리는 시기’가 있다”며 “지금은 걸작들이 나오기 전의 ‘동면기(冬眠期)’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김동식씨도 ‘피임론’에 손을 들었다. “공모에 대한 관심을 유지시키고, 문학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당선작을 내는 게 좋다는 건 심사위원 누구나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당선작 없음’ 결정을 내린 것은 데뷔의 문턱(수준)까지 낮출 수는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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