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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칼럼]두 대통령 근황

입력 | 2004-02-02 18:50:00


김혁규씨가 그제 열린우리당 지역행사에서 말했다. “참여정부의 진정한 임기는 4·15총선부터다. 지난 1년은 국회에서도 소수라 된 게 없으니 연습한 기간으로 생각하자.”

땀 밴 세금 써 가며 무슨 연습을 그리 오래 했나. 송호근 서울대 교수는 ‘신동아’ 2월호에 썼다. “집권세력이 1년 동안 한 일은 대부분 파괴이거나 해체였다. 그 대가로 이해충돌, 혼란, 경기 침체, 비전 상실, 불확실한 미래 등을 돌려받았다.”

▼새 무역地圖 발로 그리는 룰라 ▼

노무현 대통령보다 55일 앞서 취임한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59)이 또 떠오른다. 그는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지만 노동자에게 불리한 조세개혁과 연금개혁법을 전국 26명의 주지사에게서 서명 받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집권 노동자당은 하원의 18%, 상원의 17% 의석을 갖고 있다.

룰라는 그저 친노(親勞)가 아니라 진짜 노동자였다. 초등학교 2학년 중퇴에 땅콩팔이 구두닦이 등을 거쳐 선반공이 됐고 철강노조위원장으로 전국을 뒤흔든 총파업을 이끌었다.

그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행동으로 보여준 것은 ‘국가경쟁력을 해치는 모든 것과의 절연’이었다. 분배를 앞세우는 민중주의를 거부하고 성장을 위한 개방을 실행했다. 이 같은 정책 선회에 반대하는 여당 의원 4명은 당에서 내쫓았다.

경제외교에선 더 바쁘다. 지난주엔 그야말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 인도에 가서 남미공동시장과 인도간의 특혜무역협정(PTA)을 맺었다. 이어 스위스로 날아가 유럽 200개 기업 리더를 상대로 투자유치에 매달렸다.

작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 각료회담에선 개도국 그룹인 G22 연대를 주도해 선진국 독주를 견제했다. 11월엔 남아프리카 5개국을 돌면서 남미와 남아프리카 주요국간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시동을 걸었고, 12월에는 중동국가들을 찾아가 중남미와 아랍권의 경제공동체를 제안했다.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비공식 블록을 구축했다.

그는 지난 1년간 세계경제의 시한폭탄으로 불리던 브라질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다. 오는 5월엔 중국에 가서 지구촌의 새 성장센터로 떠오른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경협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룰라가 없었다면 BRICs라는 말도 생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공교롭게도 룰라가 인도에서 스위스로 날아간 시간에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프랑스에서 전자제품공장 유치, 핵발전소 건설 등 9건의 대형 계약에 서명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는 푸조 시트로앵과 둥펑 자동차합작공장의 연간 30만대분 증설을 위한 7억5000만달러 투자도 들어 있다. 한국이 65억달러의 외국인 직접투자를 유치한 작년에 1000억달러 이상 끌어들인 중국은 올해도 국가주석이 전면에 나선 가운데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주 노 대통령은 ‘대미 의존외교 파동’의 마무리 수순으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방보좌관을 바꾸었다. 이른바 자주파 실세(實勢)인 이종석 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에게 더 막강한 힘을 실어준 인사였다.

▼지배세력 위한 遷都 꿈꾸는 盧▼

하루 전 룰라와 후진타오가 유럽에서 통상외교를 펴던 날, 노 대통령은 대전에 가서 말했다. “수도(首都) 이전은 한 시대와 지배세력의 변화를 의미한다. 구세력의 뿌리를 떠나 새 세력이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터를 잡기 위해 천도가 필요했다.”

지난 1년의 연습기간에 놀라운 ‘비전’이 잉태되고 있었구나. 이만한 웅지(雄志)라면 “미군기지를 용산에 남겨 둬야 한다는 것은 낡은 생각”이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수도권 2000만을 비롯한 민초들은 새 지배세력이 충청도 도성에 둥지를 틀고, 미군은 한강 이남으로 빠지는 상황에 대비해 어떤 삶을 도모해야 될까. 기업과 외국인은 또 어떨까. 이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투자가 되건 말건, 일자리가 생기건 말건, 국민부담이 수십조 또는 100조에 이르건 말건 만세다 만세! 새 지배세력 만세!

하나 더. 무너지는 중산층도, 늘어나는 빈곤층도 파이팅이다 파이팅!

배인준 수석논설위원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