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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C감산 배경]이라크 “공급확대”에 가격급락차단 先手

입력 | 2003-09-25 18:40:00


완만한 회복세를 타던 세계경제가 ‘유가상승’이란 암초를 만났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24일 90만배럴의 감산을 결정한 것은 미국 등 원유수입국들이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뉴욕상품거래소 등에서는 OPEC 발표 직후 원유 선물가격이 배럴당 1.30달러 정도 폭등했고 증시도 돌발 악재를 맞아 비틀거렸다.

▽OPEC의 ‘선제적(preemptive)’ 감산=OPEC의 결정은 미래의 시장전망을 반영한 선제적 결정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최근 1개월 새 국제유가가 15%나 떨어져 원유전문가들이 OPEC의 ‘조치’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처럼 급작스럽게 감산합의가 이뤄질 것으론 예측하지 못했다.

OPEC의 결정에는 ‘이라크 변수’가 결정적이었다. ‘유엔이 인정하지 않은 나라’라는 베네수엘라 대표의 무자격 시비를 무릅쓰고 회의에 참석한 이브라힘 알 울람 이라크 석유장관이 증산계획을 발표한 것. 그는 현재 하루 90만배럴 수준인 이라크 수출물량을 내년 3월까지 180만배럴(생산량은 280만배럴)로 늘리고 앞으로 10년 내 생산량을 600만배럴로 늘리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해 OPEC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이라크가 계획대로 물량을 늘리면 내년 3월경 250만배럴의 공급 초과가 발생, OPEC가 목표가격으로 삼은 배럴당 22∼28달러가 흔들리게 된다. OPEC는 최근 수입국들이 원유재고를 늘리고 있는 현실까지 감안, 시장통제력을 잃기 전에 선수를 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러시아의 원유수출이 변수=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즉각 성명을 통해 “겨울철을 앞둔 시점에 감산 결정은 실망스럽다”며 “세계경제 회복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무엇보다도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기회복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 행정부가 불편해졌다. 백악관은 이슬람 회원국이 다수인 OPEC의 결정을 대놓고 비판하진 않았지만 “원유수급은 시장이 결정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OPEC의 감산 결정은 11월 거래분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90만배럴 감산만으로 국제시장 수급 불일치를 해소하기는 어려워 12월 4일 차기 OPEC 회의에서 또다시 100만 배럴 정도 감산에 합의할 것으로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란 석유장관 역시 “오늘 조치는 첫 단계”라고 언급, 이 같은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OPEC의 감산결정이 중장기적으로 유가를 떠받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계 2위 원유수출국이자 비OPEC 회원국인 러시아가 미국과 원유분야 협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 러시아는 원유 파이프라인 증설에 미국의 자본이 절실해 OPEC의 감산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