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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형광고무줄…여자속옷…22人 22色 '아름다움展'

입력 | 2003-09-25 18:02:00

이형구의 'Pink-H1으로 얼굴특징 바꾸기'-사진제공 성곡미술관


현대미술의 장르와 주제가 확장됨에 따라 추하고 역한 것도 ‘미(美)’라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미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행복과 휴식을 준다.

서울 도심에서 흔치 않은 휴식공간인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은 ‘아름다움’ 전을 10월 16일까지 연다. 국내 22명의 작가가 ‘아름다움’을 주제로 독창적 작품들을 선보인다.

1층 전시장부터 색다르다. 전시장을 수직으로, 때론 수평으로 온통 메운 형광 고무줄들이 캄캄한 공간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빨강 초록 노랑 주황 등 현란한 선들이 레이저 빔 같이 느껴진다. 이들은 형태는 있지만 만질 수 없는 가상의 빛을 만들어 낸다. 이 작품을 선보인 김태곤은 차고 날카롭게 느껴지는 선들이 팽팽하게 만들어 내는 공간의 긴장감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마치 우주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2층 전시장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작품이 박계훈의 ‘콩나물’. 가로 세로 2m가 넘는 삼베에 한지를 붙인 뒤 수없이 작은 구멍들을 뚫어 콩나물 머리 모양으로 들어올렸다. 콩나물 특유의 생명과 증식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이순주의 '천사'

정광호가 가느다란 철사줄을 용접해 이어 붙인 대형 항아리와 나뭇잎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서면서 차가운 재료에 생명을 불어넣는 그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박소영은 수없이 많은 꽃들을 맥주병이나 페트병, 심지어 쓰레기통 표면에 붙여 장식했다. 보통 생화(生花)를 썼으나 이번 작품에선 조화(造花)를 활용했다. 일상에서 흔한 것들을 ‘꽃’을 통해 새롭고 낯설게 보이게 한다. 작은 플라스틱 구(球) 안에 장미꽃을 넣어 만든 신안철의 작업도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원구가 주는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김진경은 여성용 속옷에 도자 부스러기를 붙인다든지, 잘게 부순 도자 조각들을 드레스처럼 만들어 선보였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끊임없는 반복 동작과 손놀림에 들어간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이어 중견 서양화가 남춘모의 은은한 파스텔톤 작품은 꽃무늬가 하늘거리는 거실 커튼이나 젊은 여인의 원피스 자락처럼 묘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이해영의 페트병 작업은 버려진 페트병들을 실제 집 크기로 만들어 아름다움과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재료도 훌륭하게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수석 큐레이터 신정아씨는 “미술이 너무 어렵고 무겁다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고 작가가 누구이고 하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산책하듯 편하게 감상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02-737-765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