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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객수, 진실을 알고싶다

입력 | 2003-09-16 17:46:00

최근 한국 영화는 시장 점유율 50%에 이를 정도로 급성장했지만 박스 오피스 집계에 있어서는 낙후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멀티플렉스 극장에 몰려든 관객들. 동아일보 자료사진


추석 시즌 박스 오피스 결과를 둘러싸고 영화 배급사의 ‘숫자 싸움’이 한창이다.

‘캐리비안의 해적’ ‘오! 브라더스’ ‘조폭 마누라2-돌아온 전설’이 삼파전을 벌인 흥행 대결이 다툼의 도화선이 됐다. CJ엔터테인먼트는 13, 14일 이틀간 ‘캐리비안…’의 관객 수를 11만8000명(서울 기준)이라고 발표했다. 반면 ‘캐리비안…’ 배급사 브에나비스타코리아가 밝힌 수치는 18만명. 7만여명의 차이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 흥행 싸움이 치열해질 때마다 불거지는 박스 오피스의 문제점을 짚어본다.

▽누가 맞나?=정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전산망을 통해 박스 오피스가 집계되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극장 측의 반발로 현재 통합전산망이 운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CJ…’와 ‘브에나…’ 등 양측은 16일에도 자사 자료가 객관적이며 공개 검증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CJ…’측은 “서울 지역은 주요 극장에 입회인을 파견해 관객 수를 조사하기 때문에 7만여명이나 차이가 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에 대해 ‘브에나…’ 측은 “온라인 예매에서도 줄곧 우리가 선두였고 우리의 수치가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흥행 순위를 둘러싼 영화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흥행작이 근소한 차이로 각축을 벌일 때마다 서로 “내 영화가 1등”이라고 주장하는 촌극이 벌어진다. 지난해 12월에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과 ‘반지의 제왕-두개의 탑’, 올해 초에는 ‘영웅’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중간첩’이 신경전을 벌였다. 결국 갈등이 계속되면서 ‘영화인회의 배급개선위원회’가 각 배급사 자료들을 토대로 발표하던 박스오피스 집계가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왜 부풀리나?=마케팅 측면에서 ‘개봉 첫 주 1위’라는 꼬리표가 주는 상승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 꼬리표는 국내 영화계에서도 상영기간은 줄이는 대신 많은 스크린들에서 동시에 영화를 배급하는 할리우드식의 ‘와이드 릴리스’(Wide Release) 전략을 추종하면서 더욱 의미가 커졌다.

과거에 비해 개봉영화의 ‘수명’이 단축된 상황에서 초기 개봉 성적이 영화가 계속 스크린에서 살아남을지의 여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영화계 관계자는 “한국 영화계에서 배급사의 관객 수 부풀리기는 과장해 표현하면 ‘잘못한 것이 드러나지 않는, 부담 없는 게임’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영진씨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전 근대적인 부분이 바로 박스오피스”라며 “영화가 제대로 된 산업으로 정착하려면 통합전산망을 통한 관객 집계가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합전산망은 언제쯤?=논란이 많던 통합전산망 구축은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영진위는 전산망 사업자인 LG CNS가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대로 11월초 1개월 시범운영을 하고 연말부터 전산망을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1000여개 스크린 가운데 통합전산망 참여를 희망한 스크린 수는 대략 10%선에 불과하다. 그나마 CGV, 메가박스, 서울극장 등 대형극장들은 빠져 있다. 이처럼 통합전산망이 영화인들의 숙원 사업이면서도 지연되는 이유는 대형 극장들이 매출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

영진위 이춘성 팀장은 “통합전산망에 참여하는 극장에게는 스크린쿼터 20일을 감소하는 혜택을 주지만 이 외에도 또 다른 유인책을 고려하고 있다”면서 “전산망 구축이 장기적으로 영화산업에 도움이 되는 만큼 극장들의 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통합전산망 구축은 기본적으로 영화계와 관객사이 신뢰의 문제”라며 “믿을 수 있는 박스오피스 집계는 영화산업의 투명성은 물론 마케팅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