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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소설가 신경숙

입력 | 2003-05-06 18:11:00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서 무엇 때문에 저렇게 파안대소하고 계실까. 왼쪽부터 동생, 나,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제공 신경숙씨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가끔 우리 형제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자장면도 만들어 주었고, 양념을 바른 돼지고기를 석쇠에 구워주기도 했다. 모두들 모여 밥을 먹을 때 이따금 아버지는 비빔밥을 만드셨는데 이상하게 아버지가 밥을 비비면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기름이 귀하던 때 아버지가 밥을 비빌 때만 어머니가 참기름을 한두 방울 떨어뜨려 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우리들은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어 주면 제비새끼처럼 입을 벌리고 쏙쏙 받아먹었다. 그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전혀 음식을 만들지 않는 아버지에게 내가 그때 말을 하면 아버지는 젊은 날에 당신의 새끼들인 우리가 음식을 먹는 걸 보면 당신은 무서웠다고 했다. 자그마치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이 먹성이 다들 좋으니 아닌 게 아니라 쌀독에 쌀이 푹푹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 무서움이 아버지에겐 살아갈 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들의 먹성만이 무서웠겠는가. 어린 나이에 전염병으로 이틀사이로 부모를 잃고 종가의 장손노릇을 하며 지금껏 우리들을 먹이고 학교 보내며 평생을 보낸 내 아버지에겐 무섭지 않은 젊은날이 단 하루라도 있으셨을까. ‘아버지’라고 상징되는 권력과 억압을 내 아버지는 전혀 지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연약하기조차 했다. 그분이 세상과 대적했던 방법은 온화함과 자상함이었다. 본질이 그러하셨다.

언젠가 그쪽 지방신문에 내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중앙에 있는 신문에 날 때는 아무 반응도 안보이시더니 그쪽 신문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시며 내 딸이 글씨를 잘 써서 신문에 났다고 자랑하셨단다. 그렇게라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이따금 시골집에 내려가 이제는 병을 친구 삼아 사시는 아버지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볼 때면 도시에서 죽 끓듯 하던 욕망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이제는 내가 무엇이라도 맛난 음식을 좀 해드리고 싶으나 언제부턴가 아버지는 입맛을 잃으신 듯 하다. 좀체 뭘 잡수시려고도, 어디 좋은 데 놀러 가시려고도 안 하신다. 나는 그것이 참 속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