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나라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사건으로 인해 심적 갈등 끝에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런 소식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누구든지 슬프고 불안하고 착잡한 심정을 느끼게 한다.
평생을 교육에 몸 바쳐 거기서 삶의 보람과 가치를 찾으면서 살아온 한 교육자가 자신의 생애 그 자체를 저주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깊은 슬픔 속에 빠지게 한다. 혹시 그런 갈등이 그분만이 아니라 교단에 선 많은 교육자들이 가끔이나마 경험하는 것이라면 그 슬픔은 결코 일시적인 연민이나 동정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만약 그것이 교육자 집단 내에 잠복되어 있는 갈등구조와 적대의식이 가져온 하나의 결과적 사례로 표출된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의 학교교육을 두고 심각한 불안감을 감추기 어렵다.
▼교단의 갈등구조 너무 심각 ▼
지금 그 사건의 당사자들간에 있었던 사소한 행동이나 태도의 옳고 그름을 두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오해도 있고 편견도 있으며 우연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편에 서면 그쪽은 감싸주고 상대방은 원망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마치 일회적인 단순 사건처럼 잊힐 수도 있다.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의 학교 사회에 이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적대적 갈등구조다.
물론 어느 사회에서나 구성원들간의 갈등적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지 존재하는 법이다. 기득권자가 있고 도전자가 있으며, 보수적 사고를 가진 자와 개혁적 사고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다. 추구하는 이념에 따라, 혹은 어떤 연고에 따라 서로 헤게모니의 쟁취를 위해 가벼운 대립이나 치열한 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학교 사회라고 해서 구성원들간에 그런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확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립된 노선과 행동이 끝없는 평행선을 그리고, 영원한 투쟁을 하면서 살아가는 생활의 원리나 행동의 규칙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는 서로 갈등적인 관계에 있을 수 있는 구성원들이 자신들 사이에 발생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본적인 원리를 성립시키고 그것을 공유하고 있을 때 그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고 또 실천해야 하는 가장 전형적인 사회 조직이 바로 학교다. 그런 조직이 학교라는 말은 바로 그것을 실천하는 기본집단은 교사라는 말이다. 교사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담당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의 교사들이 과연 그 위치를 지키고 있는가를 반성해 볼 시점에 있다.
특히 교원노조의 합법화 이후 교육계의 분열은 심각한 수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가 그 원인을 전적으로 교원노조에다 전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교원노조를 불온한 집단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리고 교원노조의 출범 이후 나타난 여러 갈등적 요소들이 반드시 교육의 발전에 해악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전교조 독선 없어져야 ▼
그러나 문제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교원노조, 특히 전교조의 독선적 사고와 행동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방안들에 대한 물리적 저항, 특히 탈법적 혹은 일탈적 행동, 기존 질서에 대한 피해자적 의식과 증오에 찬 투쟁 등이다. 이러한 투쟁 일변도의 경직된 사고와 행동이 전교조의 이념과 행동강령 그 자체가 아니라면, 전교조는 폭넓은 반성과 행동의 수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우리 사회가 전교조를 수용하거나 지지하기 어려울 것이며, 민주주의 교육 담당자로서 그들에 대한 애정과 기대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필자는 어느 조직에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 교육계는 서승목 교장의 ‘죽음에 의한 항변’을 진실된 마음으로 수용하고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교육학·전 교육부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