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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한영우/美-이라크-北의 ‘착각’

입력 | 2003-03-30 18:44:00


미국 영국 연합군이 이라크를 침공한 지 열흘을 넘기면서 전쟁은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는 초기 예측과는 달리 장기전으로 들어설 전망이다. 이라크의 저항이 예상보다 강하고, 족집게를 자랑하던 미국의 신무기가 민가를 때리고 있는 것도 비난을 불러오고 있다. 전 세계는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반전 여론이 거세지고 있으니 이래저래 미국의 입장이 점점 어려운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

▼패권과 독재의 시대는 지나 ▼

미국이 왜 유엔의 지지도 얻지 못한 명분 없는 전쟁을 강행하고 있는지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아마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9·11테러에 의해 상처받은 자존심을 만회하려는 심리적 요인, 석유자원 확보와 군수산업을 통해 침체된 경기를 일으키려는 경제적 요인, 이슬람을 압박해 시오니즘을 확산시키려는 종교적 요인, 여기에 덧붙여 ‘악의 축’으로 지목한 이라크에 본때를 보여주어 또 다른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북한을 압박하려는 전략도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 기회에 전 세계를 적과 동지로 분명하게 갈라놓아 미국의 울타리를 굳게 결속시킨다는 의도는 또 없는 것일까. 그래서 이 전쟁은 간단치 않다.

미국이 만약 전 세계에 표방한 대로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없애는 데만 목적을 두었다면 무기사찰을 연장하자는 유엔의 주장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또 그 사찰을 믿을 수 없다면 이라크의 군사시설이나 무기공장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전쟁양상은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것 같다.

문제는 미국의 입장과 미국의 동맹국에 속한 우리의 입장이 합치되는 부분이 있으면서도 또 완전히 일치할 수 없다는 데 심각한 고민이 있다. 당장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미국의 요구를 어느 선에서 들어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반전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나는 이런 점에서 우리 정부와 국민이 극단론에 빠지지 말고 매우 현명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의 대응도 중요하지만 이 전쟁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미국 이라크 그리고 북한의 태도 변화도 중요하다고 본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 전쟁을 계기로 국제질서는 크게 바뀌게 될 것이다. 미국의 지도력과 위상은 전쟁의 승패와 관계없이 이미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취임 초부터 지나친 대외 강경책으로 일관해 왔는데, 국제관계가 아무리 힘의 논리로 결정된다 해도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추악한 제국주의를 경험한 지 반세기도 안 된 시대로 나라마다 어느 정도의 자위력은 갖추고 있으며, 또 제각기 민족 문화를 사랑하고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전 인류적 정서가 팽배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어느 강대국이든 전 세계를 힘으로 통일하거나 자기 종교나 문화만을 옳다고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부시 행정부는 이 점을 깊이 고려하면서 힘을 자제하고 자유와 인권을 사랑하는 본래의 이상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공격목표가 되고 있는 이라크이나 북한도 이 전쟁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독재와 부국강병은 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 그것이 민족의 생존을 지킨다는 명분을 가졌다 하더라도 백성들을 굶기고 희생시키면서 강대국과 힘으로 맞서려는 것은 현명한 국가운영이 아니다.

▼극단론 극복 현명한 대처를 ▼

독재는 주민의 적개심을 먹고 사는 묘한 정치다. 아랍의 맹주가 되려는 이라크의 야망이나 강성대국을 내걸고 핵을 가지려는 북한이나 모두가 헛된 꿈임을 알아야 한다. 우선 주민부터 살려내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다. 백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하고 있는데 핵이 무슨 소용인가. 저 옛날 고구려가 왜 망했는가. 고구려는 지나치게 강성대국을 꿈꾸다가 망했다. 강대국 중국에 불손하게 계속 맞서다가 국력을 소모하고 인화를 깨뜨려 멸망을 자초했다는 ‘삼국사기’의 김부식 평을 사대주의로만 볼 것인가.

북한이 핵에 집착할수록 미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모든 나라가 군비경쟁에 뛰어들 것이고, 한반도의 평화가 깨질지도 모른다. 이라크의 비극이 새로운 약육강식 시대의 서막이 되지 않고 평화정착의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영우 서울대 교수·한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