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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곁에서]생면부지 장기기증

입력 | 2002-02-17 18:26:00


“좀 더 건강할 때 기증했어야 하는데 나이가 들어 간 기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회사원 성모씨(41)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간 일부를 떼어주고도 못내 미안해 했다. 그는 간 기증이 가능한지 검사를 받기 위해 회사에 수차례 휴가를 신청했고 며칠씩 금식했다. 혹시 장기매매를 하는 것은 아닌지 순수성 평가 상담도 받아야만 했다. 성씨는 간 기증 뒤에도 환자의 회복을 위해 기도했다.

‘얼마나 착한 마음을 가졌으면 저럴 수 있을까.’

대부분의 장기기증자는 가족이나 친척 관계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씨처럼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자신의 장기를 나눠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숱하게 장기이식을 지켜본 코디네이터로서도 고개가 절로 숙연해진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뇌사자 장기기증은 상당히 제한돼 있다. 따라서 많은 부분을 생체기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장기이식이 아니면 달리 치료법이 없는 말기 심장질환자에게는 이식의 기회가 더욱 제한돼 있다. 뇌사자의 기증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기증자의 수를 늘릴 수 있을까.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가 고민하는 대목이다. 의료 선진국에서는 기증자에 대한 배려 등 각종 프로그램에서 해법을 찾고 있다. 미국은 뇌사자가 장기기증을 하면 그 자녀에게 장학금이나 의료비 혜택을 주는 등 정책적 보상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뇌사자 장기기증이 가장 활발한 나라는 스페인으로 인구 100만명 당 33명 이상이 기증을 한다. 미국과 독일도 각각 23명과 13명으로 장기기증 선진국으로 꼽힌다. 반면 한국은 99년 4.3명, 2000년 1.4명, 2001년 1.2명 등으로 뒷걸음치고 있다. 장기를 이식받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환자도 한국에서는 힘들게 투병하거나 숨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언젠가 나의 뇌기능이 정지했을 때 나의 몸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때때로 나를 기억하고 싶다면 당신들이 장기기증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했던 나의 친절한 행동과 말만을 기억해 주십시오.”

장기기증 운동의 선구자 로버트 테스트의 시(詩) 한 구절이다. 한국에서 뇌사자 장기기증이 활발해지길 바라며….

하희선(서울중앙병원 장기이식센터 장기이식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