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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위헌제청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가열

입력 | 2002-01-30 18:16:00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라.”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예외는 있을 수 없다.”

서울지법 남부지원이 29일 양심적 병역거부자 이모씨(21)의 변호인이 낸 현행 병역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받아들인 것을 계기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문제가 새삼 논란을 빚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종교적 신념 등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대체 복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원칙 고수로 맞서고 있다.

▽찬반 양론〓양심적 병역거부 문제는 그동안 소수 종교 집단에 국한돼 논의 자체가 불온시돼 왔으나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여론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17일 불교신자이자 시민단체활동가인 오태양(吳太陽·27)씨가 입영을 거부한 채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내면서 양심적 입영 거부와 대체복무제가 본격적으로 여론을 타기 시작한 것.

양심적 병역 거부를 찬성하는 쪽은 헌법상 보장된 양심과 종교의 자유가 병역법에 의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군 복무가 아니더라도 사회봉사활동을 통해 병역을 대체할 수 있도록 현행 대체복무제를 확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화인권연대 최정민(崔正珉) 간사는 “현역 입영 거부자 처벌 규정이 양심적 종교적 병역거부자에게 아무런 제한 없이 적용됨으로써 이들은 ‘총 아니면 감옥’이라는 절박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교양학부 한홍구 교수는 “이미 각종 병역특례나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현역 복무를 면제받는 사람이 20만명에 육박했다”면서 “대체복무제를 탄력적으로 운영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사회봉사활동으로 복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방당국은 형평성 문제와 대체복무의 부작용을 이유로 이에 반대하고 있다. 현행 공익근무제도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는데 대체복무제까지 도입되면 부작용과 비리가 더욱 심해질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

국방부 관계자는 “특정 종교집단에만 군 면제의 특혜를 준다면 불공정 시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서 “입영 당시 종교를 가졌다가 대체복무를 한 뒤 다시 종교를 버리는 편법도 생겨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황 및 추세〓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매년 600명 정도씩 생겨나고 있다. 병역 거부로 인해 지금까지 1만명 정도가 형사처벌을 받았으며 현재 2000여명이 수감 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여호와의 증인’이나 ‘제7일 안식일’ 신도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할 경우 군형법상 항명죄에 해당돼 법정최고형인 징역 3년형을 받지만 입영 자체를 거부하면 보통 1년6월∼2년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입영 후 집총을 거부하기보다는 아예 입영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적으로 징병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 중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남북한을 비롯해 40여개국. 30여개국은 대체복무제를 인정하고 있다.

독일 등 일부 선진국과 동유럽 국가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대만도 2000년부터 대체복무제를 도입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 거부를 점차 인정하는 추세다.

▽전망〓양심적 병역 거부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갈수록 활발해 지고 있다. 참여연대 등 26개의 시민단체는 다음달 4일 연대회의를 구성해 본격적인 입법운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대체 복무를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어 병역법의 위헌 여부를 가릴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올 때까지 이 문제는 계속 사회적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