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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최영하/김정일의 '무기 외교' 주목하자

입력 | 2001-08-03 18:12:00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러시아 방문길에 오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관심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면적으로는 철의 실크로드를 터주는 대가로 요구할 군사협력 분야가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할 것이다.

그 첫째는 장거리 로켓이다. 1993년 11월 일단의 러시아 기술자들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을 통해 평양으로 불법 출국하려다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당시 국내에는 이들이 핵 기술자들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로켓 기술자들이었다.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바우만공대라는 연구기관은 냉전시대 미국을 앞섰던 옛 소련 우주과학의 산실로 수많은 과학기술자가 관련 산업체를 기술지원하던 곳이다. 북한은 소련 붕괴 직후까지 오랫동안 이곳에 기술자들을 파견해 연수시키면서 기술교류를 시도해 왔는데 체포된 기술자들은 여기에 연계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로켓 기술자였다는 사실은 5년 후 북한이 일본 열도를 가로질러 태평양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림으로써 입증됐다. 재래식 전력 현대화에 어려움을 느낀 북한은 핵 카드와 함께 전략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한 결과 국제사회에서 미사일 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했다. 따라서 이 분야의 내실을 다지려는 욕심이 있을 것이다. 김 위원장이 모스크바 시내의 후르니체프 로켓 조립공장을 방문한다는 보도도 이와 무관치 않다. SS-25 등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로켓이 이곳에서 조립돼 카자흐스탄의 바이코누르 발사기지로 운송된다. 한국의 많은 관리들도 이 시설을 견학했다. 러시아의 대북 기술협력 여부는 우리 외교의 과제다.

둘째, 미그29기이다. 1946년부터 1989년까지 북한이 러시아에서 제공받은 군사협력 중 마지막 사업이 미그29기 조립기술이었다. 이 사업은 소련이 붕괴하면서 중단됐으나 이미 인수했던 2대 분의 미그29 KD(녹다운·완제품 해체분)는 자체조립에 성공해 1993년 김일성 주석의 생일 행사 때 축하비행을 했다. 이들 조립시설과 기술은 지금 때를 기다리고 있다.

셋째는 T80 전차이다. 한국은 러시아에 제공한 경협차관 1차 상환분을 최신형 T80 전차로 받아 이미 수년 전에 들여왔다. 46t에 125㎜ 주포를 탑재한 T80 전차는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생산되는데 105㎜ 주포의 한국군 88전차나 54t의 미군 M1 전차보다 화력과 기동성에서 우수하여 한국 지형에 알맞은 전차로 평가받고 있다. 활강식 주포는 고폭탄뿐만 아니라 미사일도 쏠 수 있어 헬기 같은 저공 비행체를 요격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전차이다. 연통을 달면 5m 수중을 지나 도하할 수 있다. 이런 우수한 러시아 전차를 남쪽이 보유한 지 오래되었는데 북한에 없다는 것은 자존심 문제일 것이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실리외교를 벌이면서 대북 관계를 복원하고 있다. 낙후된 극동과 시베리아 지역에 한국 경제가 흐르도록 북한이 철길을 열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가를 치를 생각인 것 같다. 한국 외교가 챙겨봐야 할 대목이다.

최 영 하(전 주 우즈베키스탄 대사, 초대 주 러시아 국방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