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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경택칼럼]일그러진 영웅들

입력 | 2001-06-06 19:08:00


소설의 주인공 엄석대(嚴石大). 그의 힘은 이렇게 막강했다. 이문열(李文烈)의 대표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한 작은 읍(邑)의 국민학교 5학년 교실에서 펼쳐지는 ‘힘’의 얘기다. 그 엄석대의 엄청난 힘이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그리고 있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지만, 힘 또는 권력의 속성은 소설이나 현실이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는가 보다.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앞장선 정풍운동의 핵심은 비선(秘線)조직과의 싸움이다. 개각을 비롯한 정부의 인사, 특히 정부 산하단체나 공기업 임원의 낙하산 인사에는 항상 비공식 라인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인사시스템이 흐트러지는 원인도 바로 그 ‘힘’의 작용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힘’과 맞서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힘’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어느 최고위원이 요즘 한창 뜨는 것이다. 반면 그 ‘힘’의 질서 속으로 편입된 한 젊은 의원도 또 다른 의미에서 뜨고 있다.

여권쇄신을 부르짖는 초재선 의원들은 “이런 시스템과 뿌리를 그냥 두고는 언제든지 안동수장관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의원은 “비공식 라인의 작동을 방치한 대통령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이번 주초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몇몇 최고위원들은 인적쇄신을 되풀이 강조했다. 여기에는 비공식 라인을 정리하라는 뜻도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무런 확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분의 뜻을 충분히 들은 만큼 앞으로 적절히 판단해 처리하겠다”고만 했다.

김 대통령은 국정개혁에 대한 구상을 13일 밝히겠다고 했다. 성명파 의원들도 일단 기다려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냥 앉아 기다릴 수만은 없었는지 엊그제 다시 모여 또 한번 ‘인적쇄신’을 촉구했다. “토론은 당내에서 해야지 밖에서부터 얘기해 분열로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대통령의 ‘경고 말씀’을 들은 터이지만 아무래도 못미더웠는가 보다. 그러기에 그들은 다시 ‘인적쇄신’의 절박성을 ‘밖에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벽이 두껍고 단단하다는 뜻이다.

소설에서는 담임이 바뀌었지만 현실에서는 담임이 바뀌지 않고도 큰 개혁과 쇄신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싶다.

다음주 수요일, ‘13일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euh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