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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만의 종교이야기]해리 포터의 마법

입력 | 2000-08-31 18:32:00

해리포터 표지


해리 포터 시리즈 4권이 세계적으로 4000만권 이상 팔려 나갔고, 작가의 수입이 1억달러가 넘어섰다고 한다.

마치 신기한 마술쇼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작가 조앤 롤링이 딸에게 먹일 우유값도 없이 근근히 살아가던 이혼모였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책을 출간할 수 있었다는 점이 그런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고아 소년으로 심한 구박을 견디면서 눈부신 활약을 하는 주인공 해리 포터도 조앤 롤링을 닮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무엇보다도 마법사와 마법에 관한 이야기이다(종교학에서 마법 마술은 주술의 하위 범주이지만 여기서는 번역본을 그대로 따랐다).

마법의 세계는 일상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서 온갖 매혹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다. 마법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상에 매몰돼 있는 자들에게는 ‘머글’이라는 경멸조의 이름이 붙여진다. 마법의 세계에는 유니콘 같은 신비스런 동물들이 등장하고, 변신을 하거나 요술지팡이를 타고 날아 다니는 것이 이상스럽지 않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까지 해리 포터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이 마법세계가 주는 매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도대체 마법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가?

19세기 말 이래 서구의 수많은 학자들이 마법을 학술적으로 규정하느라고 애를 썼으나 아직 합의된 정의가 없을 정도로 마법의 범주는 애매하고, 여러 가지 모습을 지닌다. 공통된 것은 마법은 통상의 감각기관에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힘들의 상호연관성을 전제하며, 과학과는 다른 작동 원리를 가진다는 주장이다.

마법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과학과는 다른 법칙을 주장하기에 허황되고 불합리하다고 비난받는다. 또 서구의 대표적 종교인 기독교가 유일신의 의지에 순종함을 주장하는 데 반해, 민간신앙에 두드러진 마법은 인간의 뜻대로 신비로운 힘을 부리려고 하기 때문에 인간적 오만함의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다. 그래서 기독교와 근대과학의 배경을 가진 서구문화에서 마법은 항상 박해를 받아왔다. 르네상스 말기와 근대 초기 유럽에서 행해진 마녀사냥의 참혹한 역사는 마법에 대한 서구문화의 적대감을 잘 보여준다.

지금 미국 남부와 영국의 보수 기독교 단체에서 해리 포터를 성서에 위배되며 악마숭배를 조장한다고 독서 금지시킨 것은 마법에 대한 이런 적대감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앞으로 더욱 인기를 얻는다면 남한 인구의 약 4분의1이 기독교신자이고 상당수가 골수 보수신자인 우리나라에서도 소란이 일 소지가 있다.

반대자들은 해리 포터가 ‘순진한’ 어린이에게 ‘악마적’이고 비과학적인 마법세계를 심으려 한다고 주장하면서 가공할 영향력을 발휘하여 ‘악마숭배’의 분위기를 끝장내려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또다른 마녀사냥을 하기 전에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신비로운 힘을 상정하고 그 힘과 인간 마음과의 긴밀한 상호연관성을 주장하는 마법의 원리가 항상 사람들을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으며, 사실 근대과학도 그런 상상력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법적 상상력을 봉쇄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신앙을 옹색하게 만들 뿐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마법적 원리는 인간의 “꿈꿀 권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장석만(한국종교연구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