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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는 내친구]레슬링에 흠뻑 빠진 박은성씨

입력 | 2000-05-23 19:00:00


"친구나 후배들이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봐요."

서울대 전기공학부 4학년 박은성씨(26). 레슬링에 흠뻑 빠져 있는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린다. 요즘 인기가 좋은 골프나 수영 축구 야구 등도 있는데 왜 하필 레슬링이냐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 더욱이 공부에만 치중해도 힘겨운 대학생이 시간만 나면 체육관으로 달려가니 영락없이 '별종 아니면 괴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그렇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운동을 해봤지만 레슬링처럼 좋은 게 없었다.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상대를 압도해 나가다 보면 온몸이 날아갈 것만 같다. 그 희열은 안해 본 사람은 모르는 것. 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이나 쓰는 고난도 기술을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짜릿한 것은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느끼는 쾌감. '이제 무슨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슴속 깊이 자리잡는다.

1m75, 76㎏에 가슴둘레 1m10. 언뜻 보기에 운동선수나 체육과 출신으로 착각할 정도로 몸이 탄탄하다. 하지만 엄연히 '회로 설계의 1인자'를 꿈꾸는 공학도. 그러나 레슬링을 하지 않고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캠퍼스의 반칙왕'이기도 하다.

그가 레슬링을 처음 접한 때는 지난해 2월. 98년 11월 군대를 마치고 복학을 준비하다 레슬링을 배우는 학교 선배 고영도씨(드림라인)를 통해 '사부' 김종암씨(56·전 서울시 레슬링협회이사)를 만났다. 대학 1년 때인 94년 학교 역도부에 가입해 '미스터 서울대' 대회에 나가는 등 운동 마니아인 터라 한번 해봐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 레슬링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당시엔 마땅히 운동할 장소가 없어 서울역 부근 합기도 체육관을 빌려 토요일 오후 하루만 운동했다. 시험 때면 담당 교수에게 사정해 혼자 시험을 치르고 체육관으로 달려갔을 정도로 레슬링에 미쳐 지냈다.

그렇지만 그는 지난 학기 4.3점 만점에 3.86으로 평균 A이상을 받았다. 숙제와 시험준비로 1주일에 2, 3일은 밤을 새도 끄떡없다. 이는 레슬링으로 다져진 단단한 체력 때문.

레슬링에 대한 그의 열정은 서울대 사상 처음으로 레슬링이 스포츠 동아리에 공식 등록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종합체육관옆 유도장을 연습장으로 확보해 이제 주 2회 이상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조만간 공식 대회에도 출전할 계획.

그는 "레슬링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하는 특별한 선수들의 것이 아니라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