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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라이프 마이스타일]전정희/성형미인으로 살기

입력 | 2000-01-11 20:25:00


전정희씨

중학교 때부터 나는 탤런트 정윤희를 닮고 싶었다. 밤마다 30분씩 거울을 들여다 보며 눈도 커지고 코도 더 높아지기를 갈망했다. 나의 왼쪽 눈은 쌍꺼풀이 희미했으며 오른쪽은 자취도 없었다. 나는 스카치테이프로 눈꺼풀을 맞붙여 쌍꺼풀을 만들며 아쉬움을 달랬다. 스물다섯살 때인 92년 11월15일 밤, 일기를 쓰며 성형을 결심했다.

‘내 눈빛은 마음에 드는데 눈 모양은 그렇지 않다. 성형수술로 눈 모양을 더 예쁘게 만들고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면 눈 모양과 눈빛이 조화를 이루지 않을까….’(일기 중)

내 눈빛이 새하얗게 빛나지 않았더라면 쌍꺼풀수술을 단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롱초롱한 눈빛에도 불구하고 눈꼬리가 치켜올라가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깃들여 있을 때만이 성형수술은 정당하다. 눈빛은 의사가 아닌 자기 자신이 ‘성형’할 일이다. 다음은 쌍꺼풀 수술 뒤 3주간 두문불출하다 첫외출을 감행하고 나서 쓴 일기.

‘나의 눈이 예쁜가 보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주 나의 눈에 초점을 맞춘다. 화장을 해서 그런 걸까. 아닌 것이 분명하다. 친한 친구도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눈 코를 수술하고도 가족 친구 중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연스러운 모양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격 후 반동을 흡수하기 위해 47㎏이던 몸을 10㎏ 이상 불린 탓에 높아진 코가 살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언니, 여동생에겐 결국 실토했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모른다.

수술했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안했다고 대답한다. 그것은 남자친구가 “과거에 다른 애인이 있었느냐”고 물을 때 설령 있었더라도 “없었다”고 대답하는게 현명한 것과 같은 이치다. 몰라도 어차피 즐겁게 살 수 있는데 괜히 알게 되면 삐딱하게 보기 십상이다.

예쁜 여자가 세상 살기 편하다는 말이 있다. 전혀 모르는 상대라도 사람들은 예쁜 여자에게 호의를 보인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고 한다. 하기야 내가 남자를 볼 때도 마찬가지니까.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결국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아닐까. 사람들이 내게 “철원군청을 위해 열심히 운동한다”고 칭찬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사격할 뿐인 것처럼.

여덟 번을 했지만 성형수술은 내 인생에 별반 ‘사건’이 아니다. 나는 ‘5단계 구상’을 세워 주도면밀하게 실천하였다. 1단계는 정윤희와 같은 눈, 2단계는 탤런트 이미숙의 코. 이마에 잔머리털이 많아 ‘올백 스타일’을 하지 못했던 나는 영화배우 강수연의 터무니없을 정도로 반질반질한 이마를 3단계 목표로 설정하고, 내 힘으로 성취했다.

깎거나 붙이는 것이 성형이지만 운동으로 살을 빼는 것도 성형이다. 나는 마음 먹기에 따라 10㎏은 늘렸다 줄였다 한다. 그러나 팔꿈치에서 어깨에 이르는 상박부 겨드랑이 부위는 노력의 범위 밖이다. 초등학교 시절 투포환과 투창선수로 활약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이 부위에 대한 지방흡입술을 4단계 목표로 잡았다.

턱을 깎는 등 뼈를 훼손하는 행위를 나는 계획에서 제외했다. 코를 높이는 것과 달리 턱윤곽술은 신체의 일부를 떼어내므로 반(反)인륜적이라고 판단했다. 나의 성형은 그래서 자랑스럽고 즐겁다.

더 이상의 성형은 내게 없다. 계획 없는 성형은 마약과 같아서 하면 할수록 ‘좀더’를 외치게 마련이다. 단 사격장에서 매일 5시간 이상 자외선에 노출되는 직업환경 때문에 최종단계였던 안면박피술은 앞으로도 꾸준히 받을 작정이다.

성형수술이 부위별로 단계단계 실행될 때마다 내가 계획적인 삶을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에 삶의 의욕이 용솟음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돈으로는 수술받지 않는다. 사격대회 우승으로 나온 포상금은 철원군청에 불우이웃돕기 기금으로 내고 성형비용은 꼭 봉급으로 충당한다. 그래야 욕심도 줄어든다. 성형은 분명 자신에 대한 투자이지만 ‘대박’이 터지길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미혼인 전정희씨는 97년부터 철원군청 소속 클레이사격선수로 활약 중이며 23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리는 제9회 아시아사격선수권대회에 국가를 대표해 출전한다. 스포츠관련 상품의 선전모델로 일하는 게 꿈. 전씨는 “훗날 딸이 성형수술을 하겠다면 어찌하겠느냐”는 질문에 “예쁘지 않은 부분을 고치고 싶어하면 고쳐줄 것이지만 예쁜 부위를 고치려 한다면 아이의 인격을 고치겠다”고 잘라 말했다.)

▼전문의 분석 "눈-코 서양미인 조건 충족"▼

정씨의 눈과 코는 서구형인 반면 얼굴윤곽은 동양적. 눈의 가로폭은 35㎜, 눈과 눈 사이 거리는 33㎜로 양자간 비율이 1:1에 가깝다.

1:1 비율은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면서도 시원한 이미지를 준다는 이유로 서양에서 미인의 조건으로 꼽는 수치. 콧등의 길이는 50㎜로 대개 우리나라 여성들이 선망하는 ‘적절한’ 길이다.

반면 아래턱이 넓고, 양 광대뼈가 약간 튀어나왔으며 얼굴면적이 넓은 편. 넓은 얼굴로 인해 이목구비가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기는 하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믿음을 주는 역할도 한다. 옆에서 볼 때 이마가 밋밋. 자외선과 바람에 오래 노출되어 피부에 잡티가 많고 각질이 생기며 색소침착으로 인해 피부가 까맣게 보이는 것은 아쉽다.

이강원(성형외과원장 02-775-6711)

▼성형의 문명사▼

성형은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의 베다문명에서 시작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간통한 아내나 품행이 좋지 않은 딸의 코를 남편과 아버지가 베어내도록 하는 형벌이 있었다. 코를 잘린 여성들이 코를 다시 붙이기 위해 의사를 찾은 것이 성형수술을 태동 계기.

오늘날 성형술의 기초가 된 것은 ‘프랑스식 수술법’이다. 로마시대 아우렐리우스라는 외과의사가 창안한 이 방법은 성형부위에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피부를 떼어내 이식하는 것으로 훗날 프랑스에서 집대성됐다.

15세기 유럽에 매독이 창궐하자 이 병으로 코뼈가 파괴된 환자를 치유하기 위해 이탈리아 의사 안토니우스는 팔의 피부를 떼어 코에 붙이는 ‘조비술’을 고안했다.

현대에 와서는 제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점차 고성능 무기에 의해 신체가 훼손되면서 이를 복원하기 위해 성형수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 의사자격증을 가진 외국인 선교사들이 내국민에 대해 언청이 수술을 시술하면서 시작되었다. 미용성형은 60년대까지 주로 코나 유방에 파라핀 등 이물질을 넣는 확대수술과 쌍꺼풀수술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참고=이두영 성형외과원장 저 ‘아름다운 여자 만드는 남자’(한승) 김삼 성형외과원장 저 ‘나도 21세기 카오스미인이 될 수 있다’(청년정신)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