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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외국인등록법 개정 이끈 재일동포 최선애씨

입력 | 1999-08-18 18:39:00


13일 일본에서 외국인 지문날인제도가 완전폐지됐다. 외국인등록법이 개정됐기 때문. 이 개정법에는 부칙이 하나 있다. ‘특별영주권자가 재입국허가를 얻지 않고 출국했더라도 일반영주권자의 자격을 얻게 되면 특별영주권자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알쏭달쏭한 이 부칙은 19년간 지문날인을 거부해온 한 재일동포 여성이 쟁취한 ‘훈장’이다. 최선애(崔善愛·39)씨가 그 주인공. 일본언론도 이 부칙이 최씨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선애 조항’인 셈이다.최씨는 17일 자신이 살고 있는 요코하마(橫濱)에서 기자와 만나 길고 외로웠던 투쟁과정을 털어놨다.

최씨가 처음 지문날인을 거부한 것은 81년 아이치(愛知)현립예술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있을 때.

“나쁜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나름대로 뭔가 행동해야 한다고 느꼈다.”

최씨의 ‘행동’은 1만6000여명의 재일동포가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최씨에게는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최씨는 86년5월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로 유학가기 위해 일본정부에 재입국허가를 신청했다. 특별영주권자인 재일동포는 외국에 나가기 전에 재입국허가를 받아야 특별영주권자로서 일본에 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거부당했다. 지문날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

최씨는 그해 8월 재입국불허가 취소 소송을 낸 뒤 미국으로 출국했다. 일본 출입국관리소는 그에게 재입국허가 없이 출국하면 특별영주권이 소멸된다고 통보하고 확인서를 요구했다. 최씨는 이것도 거부했다. 어쩌면 다시는 가족을 못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며 출국했다.

“지문을 찍을까도 생각해 봤다. 그러나 지문을 찍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유학을 마친 최씨는 88년5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하려 했다. 그러나 비자도 재입국허가도 없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당했다. 한달 뒤 일본 나리타(成田)공항을 경유해 서울로 가는 비행기에 탔다. 그리고 나리타공항에 내려 입국을 신청했다.

일본정부는 고심 끝에 180일짜리 특별체류허가를 내줬다. 특별영주권자가 ‘외국인’으로 바뀐 것이다. 최씨는 그 후 3년마다 일반영주권을 갱신해가며 살아 왔다. 그런 그가 이번 외국인등록법 개정으로 예전의 특별영주권을 회복했다.

“먼길을 돌아왔다. 그러나 결국 원하는 곳으로 왔다. 보람을 느낀다.”

그의 아버지 최창화(崔昌華)목사도 평생을 재일동포 인권신장에 바쳤다. 최목사는 4년전 64세로 타계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일본인을 비난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내가 직접 당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는 인권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최씨는 ‘아버지’라는 단어만은 한국어로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입국불허가 취소소송은 12년만인 지난해 4월 최고재판소에서 최씨의 패소로 끝났다. 그러나 최씨는 올 4월 참의원 법무위원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지문날인 거부 이유와 재일동포의 고통 등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 결실이 ‘최선애 조항’이다.

최씨는 미국 유학시절 같은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하던 일본인을 만나 92년 결혼했다. 7세, 3세짜리 자매를 두고 있다.

“예전에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사실을 기쁘게 인정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됐다. 비록 오래 걸렸지만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