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9일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 지명자가 내년 7월 자신의 후계자로서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밝힘에 따라 러시아에 정권교체의 소용돌이가 거세게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옐친이 세르게이 스테파신 총리를 전격 교체한 것도 정권교체를 위한 권력투쟁과정에서 보다 강력한 친정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옐친의 측근들은 그가 퇴임후 안전을 도모하기에는 스테파신이 역부족이라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스테파신은 유리 류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이 올해 급조한 ‘조국’당과 일부 지방 정부 지도자들의 정치세력인 ‘모든 러시아당’이 4일 ‘통합신당’으로 합치는 것을 막지 못해 옐친을 실망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크렘린궁은 막판까지 통합신당의 결성을 저지하거나 최소한 옐친 측근 인사를 대선 후보로 하는 ‘크렘린 주도의 합당’을 시도했으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옐친이 후계자를 지명함으로써 러시아 대선은 △옐친 후계자 푸틴 △개혁성향인 ‘통합신당’의 후보 및 ‘우리집 러시아당’의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 등 개혁성향의 후보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 당수 등 좌익계열의 후보 △우익성향의 알렉산드르 레베드 크라스노야르스크주 주지사 등의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다른 유력후보인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총리는 좌우파 정당에서 모두 제휴를 원하고 있다.
옐친은 올해 들어 대선을 향한 각 정당의 난립과 이합집산이 증폭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자 크게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즉 옐친은 체르노미르딘 전총리 등 개혁성향의 후보들에 대해 지원의사를 표명하기는 했으나 이들이 자신의 퇴임후를 보장할만큼 결집된 정치세력으로 뭉치지 못하자 푸틴 카드를 꺼냈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모스크바 중재재판소가 유수의 언론그룹인 ‘미디어 모스트’에 대해 계좌차압 등 결정을 내린 이유는 이 그룹이 류슈코프시장을 호의적으로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될 정도로 이미 러시아에서는 대선후보들의 각축전이 시작됐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