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고민하고 있다.
5대그룹중 가장 재무구조가 견실하고 구조조정에서도 남다른 모범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자동차사업 정리가 삼성의 본래 의도와 무관하게 ‘총수 사재출연’ 문제로까지 번져버린 것이 가장 큰 고민거리다.
삼성자동차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회장이 사재를 내놓으라는 정부 요구를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지만 조금 내놓았다가는 자칫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에 걱정은 더욱 커진다.
삼성그룹은 비공식통로를 통해 채권은행단 및 금융감독위원회, 청와대 등의 진의파악에 나서는 한편 여론 동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재 출연 금액 고민〓삼성그룹은 당초 1천억원 이내의 사재출연을 검토해왔으나 최근 일부 여론에서 3천억∼5천억원의 사재를 출연할 것이라는 추측보도가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이건희회장의 재산은 계열사 주식이 대부분이어서 사실상 1천억원 이상 내놓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회장재산 얼마나 되나〓1조7천억∼2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이중 처분가능한 재산은 부동산 1천2백억원. 나머지는 상장사 주식 3천1백27억원과 비상장사 주식 1조2천억원(추정)정도. 그러나 상장사 주식을 팔 경우 지배주주 위치를 못지키게 되고 재산헌납을 적게 했다가 여론에 맞으면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판단때문에 고민이다. 그래서 여론을 지켜보면서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에 극적으로 결정짓자는 전략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무팀 비판여론〓지금까지 재무팀이 모든 경영을 계산적으로만 생각하고 좌지우지해 일부 비판적인 세력들은 방관 내지 내홍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재무팀에서 주판만 열심히 두들겨 해놓은 게 무엇이냐. 회장퇴진까지 거론되지 않느냐”는 성토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기아인수 포기를 주도한 재무팀에 대해 내부적 비판도 나오고 있다.
기획팀을 없앤 것이 가장 기본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신경영〓이회장이 신경영의 하나로 주창했던 7.4제(오전 7시출근 오후 4시퇴근)는 거의 없어진 상태. 삼성타운 사무직을 제외한 생산현장에서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회사별로 신경영사무국도 거의 없어지고 이제는 신경영 몇기라는 말도 안나온다.
삼성의 또다른 고민은 건설사업 부문간 갈등이다.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 시공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한판 승부를 벌였던 삼성물산내 건설부문과 삼성엔지니어링이 영종도 건설사업 등에서 사사건건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계열사간 불화는 총수의 통솔능력과 연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삼성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박래정·이영이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