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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오래된 정원(33)

입력 | 1999-02-06 20:08:00


방을 들일제 남은 구들 돌을 낙수받이로 쓸겸 통행로를 만들겸해서 방 앞의 쪽마루에서 집 둘레와 뒷간 가는 길까지 한 걸음마다 박아 두었던 것들이 잔 풀에 둘러싸여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냥 시멘트 블록인채로 있던 벽은 아마 단열재를 대고 다시 발랐는지 벽돌로 바뀌어 있었고 그 위에 흰 페인트를 칠했다. 쪽마루와 방문으로 쓰던 격자창은 그대로였는데 창호지 가운데 끼웠던 창경은 그대로 붙어 있다.

나는 대문을 열어 보았다. 뒷산이 보이던 들창은 유리창으로 바뀌어 있다. 비닐 장판이던 바닥에는 장판지를 발라 콩댐을 했는지 은은한 윤기가 남아있고 동편 벽에 내가 읍내 가서 각목과 널판자를 사다가 대패로 밀어 만들었던 까치발과 이층 선반이 그대로 있었다. 선반 위에는 낡은 책들이며 보자기에 싼 허드레 물건들이 보였다.

나는 다시 그녀의 작업실로 쓰던 칸으로 가 본다. 예전의 널문 대신에 유리가 달린 새시를 달아서 안이 들여다보였다. 바닥은 시멘트였고 방에서 드나들 수 있는 쪽문과 사람 하나 또는 밥상 하나 놓을 만한 찬마루가 있었건만, 실내 전체에 마루를 깔고 부뚜막이 있던 자리에 싱크대를 놓았다. 작업실에는 세 개짜리는 되어 보이는 연탄난로가 하나 있었고 소파와 의자도 보이고 이젤이며 캔버스며 물감으로 얼룩진 통이며 판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뒷전에서 따라다니던 순천댁에게 말했다.

저어 한 며칠 여기서 쉬었다 갈까 하는데요….

암은 맘대루 허슈. 이 집이야 오 선생 집이나 한가진께. 불을 때야 쓸것인디.

방에 보일러를 들였나요?

아녀, 그냥 엣것대루 놔두라고 혀서…부뚜막을 없애고 아궁이를 저 뒤에 냈고만이라.

집의 오른편으로 돌아가 보니 벽에다 받침대를 대고 스레트 지붕을 얹은 엇걸이 칸이 보였다. 아궁이는 검게 그을은 양철 조각으로 입구를 막아 놓았고 안쪽에는 북편으로 바람이 들이치지 않게 벽을 세웠는데 장작이며 잔가지 불쏘시개가 한 짐 그득히 쌓여 있었다.

우리 아그들이 오거나 손님이 들면 이 방을 간혹 썼제. 몇 달동안 비어 있었응께 방 청소는 해야 쓴디.

빗자루하구 걸레만 빌려 주시면 제가 하지요.

아이고 멀 그려. 오 선생 산뽀나 핑허니 댕겨오소. 내가 다 치울팅게.

아닙니다. 저 혼자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나서 순천댁의 고집을 막노라고 좀 강하게 이었다.

청소하면서 그 사람 생각두 해보려구요.

역시 그네는 순순히 물러났다.

이 이, 그려…그렇겠고만이라.

나는 작업실의 뜰층계 위에 신발을 벗어 두고 새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루의 냉기가 차갑게 올라왔다. 그런데 어디서 은은하게 화아 한 송진 냄새가 났다. 가만있어, 기억이 나는데. 이게 무슨 냄새였지. 테레…테레핀 냄새. 윤희가 두 세 개의 붓을 쥐고 튜브에 짜놓은 물감을 갤 때에 부어놓던 기름이다.

윤희에게선 언제나 그 냄새가 났다. 바지와 앞치마에도 그 냄새는 물감과 함께 색색가지로 엉겨 붙어 있었지. 나는 화판을 줏어 들었다. 물감을 묻히고나서 고르게 하노라고 몇 번 터치를 해본 그네의 붓자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붓 털의 자욱도 섬세하다. 나는 화판 든 손을 가늘게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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