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간 회담을 성사시키기까지 여야는 적지 않은 산고(産苦)와 우여곡절을 겪었다.
총무와 총장라인 등 막후채널을 총동원한 여야의 협상과정에서 양측은 ‘묵은 감정’탓에 여러차례 잠정합의내용을 번복했고 여러 라인을 동시에 가동해 혼선을 빚기도 했다.
특히 회담 하루전인 8일에도 의제 등에 완전히 합의하지 못해 두차례나 총무회담을 여는 등 진통을 거듭했다.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총무는 이날 낮부터 서울시내 모처에서 만나 사전조율을 시도했으나 핵심쟁점에 대한 의견접근에 실패했다.
당초 한총무는 합의문 전문에 경제살리기에 여야가 최선을 다하고 ‘국세청 불법대선자금 모금사건’과 ‘판문점 총격요청사건’은 앞으로 재발돼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넣자고 요구했다. 이에 박총무는 “이총재가 ‘세풍’에 대해 이미 사과했고 ‘총풍’에 대해서도 7일 ‘검찰수사를 지켜보자’고 언급한 만큼 여권이 더이상 요구해서는 안된다”고 맞섰다.
한총무는 또 정기국회에서의 개혁입법 처리와 함께 경제 및 방송청문회를 회기내에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박총무는 경제청문회 개최원칙에는 동의하지만 시기는 예산안처리 이후로 정해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양당 총무들은 두번째 협상에서는 정쟁을 지양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등 쉬운 합의사항을 앞세우고 세풍 총풍사건에 대해서는 김대통령과 이총재가 간단히 언급하는 선에서 회담을 진행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7일까지의 여야협상에서는 국민회의 정균환(鄭均桓), 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총장간 총장라인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3일 물밑접촉을 통해 총재회담 일보직전까지 합의를 이뤄냈으나 양측의 ‘감정대립’으로 결렬 위기를 맞았다. 김대통령이 전국검사장회의에서 두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자 한나라당측이 “총풍의 본질은 고문조작”이라고 역공했기 때문.
이로 인해 급격히 냉각됐던 분위기는 6일 밤 양당 총장들이 만나 막판 쟁점 조율에 들어가 경색정국을 빨리 풀기 위해 회담을 대통령의 중국방문 이전에 개최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어 이총재가 7일 오전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총풍과 관련한 검찰수사가 진행중이지만 제대로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지켜볼 것”이라며 기존의 완강한 태도에서 한걸음 물러남으로써 회담성사가 가시화됐다.
한편 청와대 회담 성사에는 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박의장은 5일 대통령과의 면담자리에서 이총재 입장을 간곡하게 전달한 뒤 다시 김대통령의 의중을 이총재측에 전해 두사람간의 오해를 푸는 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기대·문 철기자〉k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