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러총리 전격해임 배경]옐친,경제파탄책임 내각에 떠넘겨

입력 | 1998-08-24 19:36:00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세르게이 키리옌코 총리(36)를 전격 해임하고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전총리(60)를 5개월만에 다시 총리로 복귀시키는 ‘깜짝쇼’인사를 단행했다.

옐친대통령은 5주일간의 휴가를 마치고 크렘린궁으로 돌아온 이날 오후 내각을 전격 해산하는 대통령령을 발표한 뒤 24일 하원(국가두마)에 총리인준을 요청했다.

▼다시 불거진 전격인사〓러시아정부가 17일 루블화를 평가절하하고 일부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을 선언한 이후 개각이 있을 것으로 예견돼왔다.

그러나 출범 5개월밖에 안된 키리옌코를 해임하고 다시 체르노미르딘을 기용한 것은 옐친 특유의 독불장군식 통치 스타일에 따른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서방관측통들은 “일이 잘못되면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옐친의 버릇이 도졌다”고 평가했다. 옐친은 집권 이후 잘못된 일은 모두 다른 사람 책임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권위에 맞서는 인물을 제거하기 위한 수단으로 개각을 이용해왔기 때문.

그는 키리옌코를 임명할 때도 “러시아는 새 인물이 필요하다”며 체르노미르딘총리를 해임했다. 92년에는 시장개혁이 갖가지 문제에 봉착하자 당시 예고르 가이다르총리를 서슴없이 희생양으로 삼아 해임했다.

▼내각 해산 이유〓옐친은 키리옌코를 해임한 이유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아 그의 속내를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통치전략으로 미루어 악화하고 있는 경제위기 때문에 러시아가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하고 책임의 화살이 점차 자신에게 향하자 키리옌코 내각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러시아의 대외신용도는 땅에 떨어지고 국내 경제상황은 악화일로에 있다.

21일 러시아 하원 임시회의는 옐친 하야촉구결의안을 2백45대 3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키면서 대통령과 총리의 동반사임을 요구했다. 여당격인 우리집 러시아당 등도 정부의 실정을 비난하며 거국 내각 구성을 주장했다.

옐친은 ‘청바지 세대’인 키리옌코를 총리에 앉힐 때 공산당 등 좌파가 주도하는 하원에 해산위협까지 하며 인준을 강행했으나 경제상황이 발목을 잡자 순식간에 그를 버린 것이다.

▼러시아 정치 경제는 안정될까〓러시아의 주가와 루블화가치 급락세는 17일의 정부조치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하락행진을 계속해왔다.

총리경질에도 불구하고 24일 루블화가치는 2% 더 떨어진 달러당 7.14루블이 됐다. 물가가 급등하고 달러 및 생필품 사재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때문에 서방전문가들은 “러시아의 정치와 경제를 한순간에 안정시킬 묘약은 없으며 어떤 내각이 들어서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은 제한돼 있다”며 러시아의 앞날을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윤희상기자·모스크바외신종합연합〉he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