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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화『마스터클래스 이젠그만』…앙코르무대서 뜻밖의 선언

입력 | 1998-05-18 07:52:00


그는 여전히 당당하고 강렬했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로 변신해 무대 위에 선 윤석화(43). ‘이해랑 연극상’ 수상을 계기로 13일부터 서울에서 다시 막을 올린 ‘마스터클래스’의 앙코르 무대.

그러나 첫날 공연을 마치며 그는 환호하는 관객들에게 뜻밖의 인사를 했다.

“이번 앙코르공연을 끝으로 저는 이제 더 이상 ‘마스터 클래스’ 무대에는 서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역을 대신하겠지요.”

왜? 불황중에도 ‘마스터클래스’만큼은 지방공연 요청이 쏟아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윤석화는 “지금까지의 공연으로 충분히 구원받았다. 이제 이 역을 떠나야 할때”라고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위로와 구원.

지난 몇달간 마리아 칼라스로 살며 윤석화는 상처입은 자신을 치유받았다. 마스터클래스의 학생들에게 퍼붓는 칼라스의 독기어린 대사들. 그것은 무대위에서 24년을 살아온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는 거울이었다.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었다면 윤석화는 연극계에서 조용히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밤을 울면서 잠들었는지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어요. 여러 해 동안 누구보다도 뛰어나게 노르마를 불렀죠. 하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그것 뿐이에요. 눈물 젖은 베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거죠(칼라스).

“지난해 ‘명성황후’ 뉴욕 공연에서 제외되며 연극이 나를 배반하는구나 싶었습니다. 23년간 한 남자만을 사랑했어도 연극에 대한 열정만큼은 못했을거예요. 믿지 않으시겠지만 한번도 ‘스타’라는 위치를 마음 편하게 누려본 적이 없어요. 공연할 때마다 스스로의 부족을 확인해야 하는 절망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연극을 위해 너무 혹독한 대가를 치르며 사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라스는 생전에 비평가들로부터 차가운 평을 얻기 일쑤였다. 때로는 무대위로 관객이 던진 토마토가 날아들기도 했다. 인기절정에서도 “모두들 날 질투해. 내가 실패하는 걸 보고 싶어하지”라는 강박에 시달려야 했던 칼라스. ‘하물며 칼라스도 그랬는데…’라는 동병상련이 윤석화의 지친 마음을 위로했다.

―난 뒤에도 눈이 달렸다구요. 무대에서 성공하려면 그래야 하는 거예요. 항상 누군가 당신 등 뒤에서 당신을 쓰러뜨리려 하죠. 그게 현실인거야.

“모두가 내 연기에 대해 비판할 때 호평을 받으면 감사하게 되고 위로가 됩니다. 하지만 감사는 언제나 아픔보다 빨리 잊히죠. 열심히 해도 돌을 맞을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아픔이 저를 키우기 때문입니다.”

칼라스는 “극장에서의 성공은 완전한 집중을 필요로 한다. 100%의 치밀함을…”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윤석화도 그렇다.

“공연을 할 때는 극장의 미세한 먼지조차도 매일매일 그 두께가 다른 게 느껴져요. 조명을 밝히는 전구 하나가 나가도 그걸 알아차리죠. …100% 이상의 치열함이 아니면 안됩니다. 치밀함의 정체가 뭐죠? 바로 지극한 정성입니다.”

―예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세요. 아니라면 이 분야를 떠나세요. 타협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칼라스는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 때문에 전성기를 누린지 10여년만에 목소리를 잃었어요. 사랑을 다 바친 오나시스에게서도 버림받았구요. 연기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누구 하나 그걸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자신을 다 바치지 않은 것이 어떻게 사랑이고 예술일 수 있겠어요.”

칼라스는 인생의 무대 앞에서 떨고있는 학생들에게 외친다.

“생각하지 말아. 아무것도 바라지 말구. 그냥 하는 거야. 용기!”라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제것으로 살고 싶은 모든 이들. 그들에게 자신을 구원한 칼라스의 메시지가 전해지도록 윤석화는 디바의 영혼을 온몸으로 토해낸다.

24일까지.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 월∼금 오후7시반 토 오후4시 7시반 일 오후3시. 02―745―8497,8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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