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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칼럼]박양천/이유있는 동아시아 금융위기

입력 | 1998-02-05 20:28:00


홍콩은 세계 4대 국제금융센터 중의 하나다. 세계 1백대 은행 중 85개가 진출해 있고 우리 나라 금융기관도 80여개가 영업중이다. 또 전체 외화소요량의 3분의 1을 이곳에서 조달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국제금융센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남아 금융위기의 여파로 홍콩에 거점을 두고 활동해온 세계적인 금융기관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수개월간 금융위기의 현장을 지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 기초여건 부실 악순환초래 ▼ 첫째, 기초 경제여건이 튼튼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물부문이 견실하여 물가가 안정되고 경쟁력을 유지하여 재정과 국제수지가 균형을 이루게 되면 대외 충격을 버텨낼 수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 우리나라 모두 그동안 고성장을 추구하면서 상당규모의 국제수지 적자를 냈고 그 적자를 외자에 의존, 외채가 누적돼 왔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생기자 외채상환 부담이 가중되면서 이를 더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경제규모가 큰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작더라도 견실하게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가 규모는 작으나 이번 외환위기를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견실한 경제운용으로 매년 대규모의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둘째, 아무리 기초여건이 튼튼하더라도 금융부문이 취약하면 경제 전체가 어려움에 처한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경우 금융부실채권의 누적으로 기업대출은 물론 적정 자기자본도 마련하기 어려워 정부에서는 30조엔의 공적자금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태국의 구조조정계획이나 중국의 국영기업 민영화 계획추진에 있어서도 금융기관 부실문제가 가장 큰 제약요인으로 돼있다. 우리의 경우도 작년초 한보사태이후 10개 재벌기업의 부도로 금융기관 무수익여신(6개월간 이자회수가 안되는 자산) 규모가 21조원(작년 9월말기준)으로 총대출의 6.8%에 달하고 있다. 셋째, 금융부문의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체계를 엄격히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홍콩이 환율 고평가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에 처하지 않은 것은 엄격한 금융감독체계 덕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의 제도를 따른 홍콩 금융감독제도의 핵심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이상의 최소 자기자본 적합률 및 유동성 비율 유지, 부동산 및 유가증권투자에 대한 보수적인 한도설정 규제, 동일인 한도 규제 등이다. 우리의 경우 그동안 규제완화 바람이 불어 특히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이 소홀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넷째, 환율정책에 있어서의 유연성이다.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각국은 작년 외환위기 발생전까지 사실상 고정환율제를 유지해 왔는데 이것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직접적 요인이 됐다. 기초경제 여건이 취약함에도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허용돼 화폐가치가 유지되었으나 언젠가 평가절하될 것으로 내다본 외국의 대규모 환투기로 가치가 일거에 폭락하게 된 것이다. 다섯째, 외환위기를 관리하고 극복할 정부의 능력과 의지다. 작년 7월중순 기아사태 발생이후 외환위기 징후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만 믿고 외채관리나 외환보유액 관리에 소홀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 대외협력 분위기조성 필요 ▼ 여섯째, 대내적으로는 우리 모두 한국이라는 한배에 탔으며 대외적으로는 동아시아 전체가 상호공존해 나가야 한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는 개별기업뿐 아니라 국가평가를 중시하며 외환위기를 당한 나라에 대해서는 국가평가가 훨씬 중요시된다. 앞으로는 과거처럼 대기업들이 유사업종에 경쟁적으로 시설투자를 늘려 외국 경쟁사의 반감을 사는 일이 없도록 대외 협력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박양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