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적’이 아니었다. 서로를 ‘탓’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영광’을 일궈낼 ‘동반자’임을 확인할 뿐이었다. 98프랑스 월드컵축구 본선을 향해 처절하리만큼 숨가쁜 레이스를 펼쳤던 한국과 일본. 마침내 본선 동반진출의 꿈을 이룬 양국의 사령탑은 ‘어제의 적’에서 ‘오늘의 동지’로 바뀐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한국축구대표팀 차범근감독(45)과 일본대표팀 오카다 다케시(岡田武史)감독(42). 양국 축구를 나란히 월드컵본선으로 이끌며 ‘축구 영웅’으로 떠오른 두 감독은 지난해 12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열었다. 동아일보사와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공동기획으로 마련한 ‘98월드컵본선 동반진출기념 한일축구대표감독 대담’은 두 사람이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얘기들을 털어놓으며 서로를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는 시간을 만들어줬다. 차감독을 맞는 오카다감독은 정중했다. 오카다감독을 보는 차감독의 시선은 따뜻했다. 최종예선에서 두 차례 팽팽히 맞서 어색했던 관계. 그러나 두 사람은 언제 그랬었느냐는 듯 미래를 향해 서로를 격려하며 손을 꼭 잡았다. “한국이 먼저 16강에 올라가면 일본도 그 뒤를 따르겠다”는 오카다감독의 말에 차감독은 “치밀하고 성실한 감독을 새로 맞은 일본이 월드컵본선에서 꼭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두 감독은 서로의 말은 몰랐지만 독일에서 선수생활과 코치수업을 받은 인연으로 만나자마자 말문을 쉽게 트는 우정을 과시했다. 첫 만남이었지만 독일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농담을 주고받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만남을 끝낸 이들의 표정은 ‘친구’로 다시 태어났다는 흐뭇함이 배어 있었다. 〈도쿄〓이재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