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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에 비친 1997년]화두는 「추락하는 경제」

입력 | 1997-12-29 20:20:00


97년 「창」에는 추락한 우리경제의 일그러진 모습이 유난히 많이 비쳐 올 해의 화두(話頭)가 경제였음을 여실히 느끼게 해줬다. 연초 노동법 파동으로 시작된 경제의 난맥상은 한보사태와 기아사태를 거치며 끝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도입하는 것으로 이어져 국민 모두를 자괴감에 빠져들게 했다. 특히 현직 대통령 아들인 김현철씨의 구속은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권력형 비리를 다시 드러내며 문민정부가 외친 도덕성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던 국민에게 분노를 안겨줬다. 연초 노동법 파동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터져나온 한보비리는 우리경제의 추락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충남 당진의 한보철강 제철소앞에서 중국집을 경영하다 한보부도로 외상값을 받지 못해 4천여만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 중국집 주인의 모습(1월30일)은 이후 국민이 당할 고통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한보에 부실대출을 계속해준 제일은행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은행감독원에 대한 불만의 소리(2월7일)와 제일은행 소액주주들의 분노에 찬 항의의 목소리(3월8일)에 침묵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은행관계자의 모습은 무원칙과 편법이 횡행하는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은 오히려 당당했다.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회사 돈을 빼서 쓰기도 한다』는 한보그룹 정태수총회장의 「회사돈이 쌈짓돈」이라는 강변(3월18일), 정씨에게 뇌물을 받은 「깃털」 정치인들이 『정치자금인줄 알고 받았다』는 궤변(4월1일), 한보비리의 몸통으로 끝내 구속에까지 이른 김현철씨는 법정에서 오히려 『전혀 청탁을 받은 일이 없다』는 말(7월8일)로 자신의 결백을 강변했다. 한보부도에 이은 기아사태의 장기화는 내리막길에 선 대한민국호에서 브레이크마저 떼어냄으로써 끝없는 추락에 가속도를 붙여줬다. 30년 넘게 다니던 국영기업체에서 명예퇴직한 뒤 퇴직금과 은행대출금으로 자판기 사업을 하다 실패해 집까지 팔아버린 50대 가장의 자살(6월18일)은 한국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나 다름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납품회사의 부도로 휴지조각이 돼버린 1억6천만원짜리 어음을 호주머니 속에 간직한 채 한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중소기업 사장의 죽음(10월2일), 거래업체의 부도로 소규모 봉제공장에서 키워오던 「재봉틀 사랑」의 꿈을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50대 가장의 자살(10월29일) 등…. 취업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취업박람회장에 나와 아들 대신 입사지원서를 받으러 다니는 50대 주부의 모습(10월25일)과 노래방과 주유소 등에 취직한 대학졸업예정자의 모습(10월28일)은 취업대란의 슬픈 풍속도였다. IMF 한파는 더 매서웠다. 실업자의 급증은 가정에 머물던 주부들을 부업전선과 재테크 강좌로 내몰았다(11월6일). 은행대출금 이자 급등으로 내집마련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주부(12월12일)와 종금사의 업무정지로 종금사에 예치한 돈을 못찾아 부도위기에 몰린 중소기업 사장(12월13일)의 피맺힌 절규도 있었다. 매년 반복되는 대형사고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괌에서 추락한 대한항공기의 희생자 유가족이 분향소를 찾은 교통부장관에게 던진 『벌써 이런 사고가 몇번째냐』는 울부짖음(8월10일)과 정든 가족을 이국땅에 묻고 떠나야만 하는 유가족의 슬픔(8월12일)은 우리 모두를 향한 분노와 슬픔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대한항공기 추락으로 놀란 가슴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일어난 박초롱초롱빛나리양 유괴사건은 전 국민을 분노케했다. 현장검증 당시 임신부인 범인 전현주씨에게 비난을 퍼부은 시민들(9월18일)은 법정에서 결백을 주장하는 전씨의 모습(12월17일)에 한 인간에 대한 철저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여고생 접대부를 지도하는 한 교사의 절망(5월31일)과 10대들이 찍은 비디오 「빨간 마후라」를 찾는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모습(7월21일)은 청소년 탈선의 근원이 결국 어른들에게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대학생들의 시위를 진압하던 중 숨진 전투경찰(6월6일)과 무고한 시민을 프락치로 오인, 죽음까지 몰고 간 한 여대생의 때늦은 눈물(6월10일)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우리사회의 또 다른 환부를 드러냈다. 그러나 소매치기를 잡으려다 숨진 20대 시민(1월12일)과 물에 빠진 어린이들을 구하고 도리어 물에 빠져 숨진 고교생 3명의 의협심(7월23일)은 우리사회를 비쳐준 한줄기 햇살이었다. 97년 「창」을 통해본 한국사회는 즐거움보다는 「고통」이, 전진보다는 「추락」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98년 창」에는 더욱 매섭게 몰아칠 불황의 한파를 꿋꿋하게 이겨내는 밝은 모습들이 비치기를 기대한다. 〈이현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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