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의 귀신. 내 같앴으면, 밥을 딱 안 받아묵고 팍 죽었을 끼다. 밥은 삼시 세 때, 우째 그리 꾸역꾸역 잘 처받아 묵노」. 폐인이 된 아버지에게 퍼붓는 엄마의 저주. 딸 앞에서 아버지는 생전 처음 눈물을 보인다. 「아, 아, 아, 아라…」. 풀어진 눈시울을 타고 번지는 아버지의 눈물. 얼마나 이렇게, 많이 울었던 걸까. 「이기 뭐꼬? 똥냄새 아이가?」 엄마는 벌컥 아버지에게로 다가가 다짜고짜 허벅지를 철썩 내리친다. 그때, 그 세찬 타격감과 퍼부어지는 모욕에, 번쩍 눈을 뜨는 아버지. 노여움에 몸을 떠는 그는 그러나, 작고 초라하기만 하다. 그 순간 엄마의 머리에서 풍겨오는 시큼한 냄새. 이게 무슨 냄새지? 아무렇지도 않게 머릿수건을 벗어 내던지는 엄마. 마요네즈다…. 이따금, 엄마가 머리에 영양을 주기 위해 통째 비워 바르는 「음식」. 갑자기, 똥무더기에 짓이겨진 아버지의 곰팡이 핀 엉덩이와 마요네즈를 짓이겨바른 엄마의 새치 돋은 검은 머리가 찰흙반죽처럼 혼합되면서, 토악질이 치민다…. 신예작가 전혜성씨(37). 그가 처음 세상에 선보인 장편소설 「마요네즈」(문학동네). 예사롭지가 않다. 모성의 「징그럽고 적나라한 동물성」이라는 생경한 주제를, 충격적으로 그렸다. 피가 묻어나듯, 생생하고 섬뜩한 필체로 「후벼파듯이」. 『모성은 무조건 아름답다는 신화를 부수고 싶었어요. 모성이라는, 가족과 혈연을 짓누르는, 그 추한 욕망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고 싶었지요. 비현실적인 모성애에 대한 「살의(殺意)」랄까…』 「니도 나중에 자식 낳아보면 에미 마음을 알 끼다」. 아마도 이 땅의 딸들이 수도 없이 들어왔을, 그리고 그들의 딸들에게 또다시 들려줄, 우리 어머니들의 이 외마디는 작품 속에서 철저하게,그리고 남김없이 부정된다. 대신에, 「엄마는 나빴어. 이기적이야. 무능해. 엄마는 바보 같애」라는 유년기의 고통스러운 독백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작품 곳곳에는, 피아노의 망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의 날마다, 집과 교습소 사이 모든 전봇대를 부둥켜 안고 엉엉」 울어야 했던 여덟살바기의 절규와 「내 딸은 마 가마이 있어도, 줄리아드 지가 쪼르르 달려와서 공짜로 모시간다 칼 끼다」라는 엄마의 탐욕스런 허영심이 아프게 교차된다. 『가족간의 사랑이라는 게 그냥 밥그릇 속에,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속에 「거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맹목적인 사랑의 이면에는 모성의 「불완전한 자아」가 이끼처럼 기생하고 있지요. 혈연의 껍질을 깨는, 치열한 자기응시 없이는 가족도 피상적인 관계에 불과해요』 이 작품으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래서 그는 비로소, 아이를 낳아 기르는 30대주부와, 「멀어져만 가는」 사회 사이의 「통로」를 열었지만 엉뚱한 파장도 있었다. 작가의 사적 고백처럼 들리는 1인칭 소설의 정황 때문에 「엄마」가, 소설의 내용을 전해듣고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첫 작품이라 다소 「출혈(出血)」이 있더라도 절로 우러나오는 주변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러나 소설은 결국 허구일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부분을 엄마에게 이해시키기 힘들더군요』 앞으로는 동성애를 포함한 페미니즘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한다. 동성애를 통해 「과연 우리 사회에 진정한 여성성의 긍정이 있었던가」하는 묵직한 주제를 건드려보고 싶다고. 『우리 시대에도 여성들에게 자신의 성(性)은 「버거운 덫」이에요. 자기모멸과 자기부정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자기도취의 대상인, 「기분 나쁜 야누스」 같은 어떤 것. 자기애와 자기긍정이라는 점에서 동성애를 다루고 싶어요. 이성애나 모성애의 대리완성 욕구가 아닌…』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