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금세탁방지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지하경제를 줄이고 경제활동을 투명하게 하는 바탕을 깔기 위한 것이다. 이번 한보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부정부패는 돈세탁을 통해 자라났으며 세탁된 돈은 정의사회를 비웃으며 사과상자에 담겨 불법거래돼왔다. 정부 관계자는 『마약류 불법거래 방지 등에 관한 특례법이 있는 만큼 자금세탁방지법의 주요 대상은 정치인과 공직자의 뇌물』이라며 『이 법을 통해 차명거래가 버젓이 허용되는 현 실명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도입부터 반대하는 시각이 많았던데다 돈 흐름에 대한 제재와 처벌조항이 따르기 때문에 법안 내용과 관련해 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사생활 및 금융거래 비밀보장이나 헌법에 보장된 경제활동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다. 법안을 마련한 정부당국에서는 관련조항을 두루 점검했다고 자신하지만 실제 운용과정에서 마찰이 우려되기도 한다. 李石淵(이석연)변호사는 제도도입을 찬성하면서도 『그러나 이 법이 사생활비밀보장이나 경제활동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에 위배되지 않도록 관련 조항을 세심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는 경제적 충격의 가능성이다. 이 법안이 금융실명제 실시 못지 않은 경제적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고액현금거래의 실명확인 및 국세청 통보라는 수단을 통해 지하자금 양성화를 원천적으로 무산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법 위반시 처벌이 징역형 등 위주여서 금융거래를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차명예금도 이 법에 저촉된다는 우려에서 아예 「검은 돈」들이 제도금융권에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셋째는 금융기관 직원들이 불법거래 혐의를 제대로 포착해 국세청 등에 제때 통고할 수 있느냐 하는 운용효과의 문제다. 어떤 거래가 불법 혐의가 있는 거래인지에 관해 당국이 금융기관 직원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키겠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수사관과 같은 「감각」을 기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 제때 통고하지 않을 경우 금융기관 직원의 처벌문제도 따르며 이 경우 금융계의 반발도 예상된다. 넷째는 법안 내용을 따지기에 앞서 국회가 이런 법안을 통과시킬 의지가 있느냐는 현실적인 문제다. 실명제 이후 정치자금 조달과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치인 국회의원들이 이 법의 제정에 쉽게 동의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난 94년8월 민주당이 실명제 1주년을 맞아 돈세탁방지법인 「부정자금유통거래방지법」을 추진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번의 법안도 국회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크게 변질되거나 아예 유보될지 모른다는 관측조차 나오고 있다. 〈임규진·이용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