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사회 뒤안길에서 한숨짓는 사람들이 있다. 「인판인(印版人)」으로 불리는 도장파는 사람들. 기업체나 관공서 등에서 도장으로 처리하던 각종 결재 계약 등을 서명이나 컴퓨터로 대신하면서 수요가 크게 줄어듦에 따라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 서울 강남구 역삼동 남영사 대표 睦宣均(목선균·55)씨는 『지난 92년 이후 도장주문이 급감하는 추세』라면서 『몇년전만 해도 막도장을 파달라는 주문이 하루 10건 정도 들어왔으나 요즘에는 고작 1,2건 수준』이라고 말했다. 한국인판업협회(회장 韓瑢澤·한용택·65)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50개 이상의 도장점이 문을 닫았다. 한회장은 『폐업을 안한 회원들도 도장만으로는 생계 유지가 안돼 인쇄 문구 열쇠점 등을 겸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통에 몰려있던 속칭 「도장로」도 이젠 옛말이 됐다. 인판인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곧 시행될 전자주민카드 도입. 인감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 「총체적 위기」에 몰린 도장업계는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인판인협회가 최근 「한글전서체」를 내놓은 것은 도장을 「구식」으로 여기는 신세대들을 붙잡기 위한 전략. 영세한 점포들을 통페합, 대형전문상가를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이와 함께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은 도장」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한다는 방침이다. 『서양은 이름 전체를 서명에 사용하지만 한국인들은 성이나 이름중 일부만을 사용하는 경향이라 변별력이 떨어지므로 도용될 위험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이명재·이승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