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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론]「주인」이 있어야 책임진다

입력 | 1997-01-29 20:19:00


이번 한보사태는 우리 나라에서 금융개혁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우리 금융의 문제가 단순히 금융만이 아닌 사회전반의 총체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차에 걸쳐 금융개혁이 시도됐었지만 성과가 기대에 크게 미흡했던 까닭은 문제의 본질은 덮어둔 채 금융제도나 관행 등 금융문제만을 손질한데 있다. ▼ 은행 방만운영의 교훈 ▼ 우리는 이미 우리 금융의 문제점과 그 해답까지도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 이를 실천해야 하는가를 놓고 이견이 있을 따름이다. 금융과 연관된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이득만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금융의 자율성과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외치면서도 막상 그것이 자신의 이해에 반할 때는 구호와 다른 행동을 해왔다. 금융의 자율성은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전제로 하고 책임은 주인만이 질 수 있다. 기업의 주인이 누구여야 하는가를 놓고 자본주의는 영국과 미국식의 주주 자본주의와 독일과 일본식의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두 유형으로 경쟁해 왔고 이 경쟁은 전자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 기업의 주인은 경영의 결과에 대해 가장 큰 위험을 부담하는 주주가 돼야 하며 은행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산업자본이 금융을 지배하면 경제력 집중과 비경쟁적 시장을 초래한다는 교조적 논리의 포로가 되어 은행을 책임질 수 없는 자로 하여금 책임을 지게하려는 잔꾀를 부려왔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피해가 큰 금융기관은 이른바 주인없는 은행들이고 제2금융권 중에서는 유독 주인이 없는 은행계열의 리스사들과 정부가 인사권을 쥐고 있는 보증보험회사들이라는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물론 산업자본의 제한없는 은행지배는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 소유나 지배제한은 불가피하며 공정거래법 등의 폐해를 막기 위한 차단장치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은행경영에 대한 감독의 강화다. 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감독기능의 강화는 단골처방이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 내용은 은행의 책임경영을 강화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자율성과 기업성을 저해하는 것들이 많았다. 개발금융시대의 유물인 여신관리제도나 자산운용에 대한 제약을 강화하는 등이 그 예다.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은 경영의 건전성을 제고하고 부실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예방적 감독이어야 한다. 이번 한보사건도 은행에 여신심사와 운용에 대한 자율성이 주어지고 경영에 대한 감시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 정치인 금융무지 허탈 ▼ 이번 사태에 대한 감독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은행에 대한 감독이 효율적이고 충분했는지, 그리고 감독기관간의 원활한 협조체제가 유지됐는지 자성해볼 일이다. 은행경영자들의 소신없고 보신에만 급급한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변명이 될 수 없다. 그들이 만족시켜야 할 대상은 주주와 고객이 아니라 그들의 지위를 보장해 준 실력자들과 노동조합이었다. 정치인들의 금융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도 우리를 허탈하게 했다. 걸핏하면 신용대출을 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면서 막상 부실대출이 발생하면 담보없이 대출한 것을 책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아무런 물적 인적 담보도 없이 신용으로만 하게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금융을 정치적 논리로 이용하는 나라치고 제대로 된 나라는 없다. 지금 우리 경제는 참으로 어렵다. 머리를 맞대고 해법부터 찾는 것이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강 병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