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미국의 노골적인 메모리 반도체 투자 압박에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고심이 커지고 있다. 메모리는 비용 절감을 통한 생산 효율화가 핵심 경쟁 요소인데 미국으로 이전할 경우 막대한 손실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메모리 기업인 마이크론조차 그간 대만과 일본에 주요 생산기지를 둬 왔다.
1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에서 메모리 공장을 운영하면 비용 부담이 최소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지난해 “반도체 팹(공장)을 미국에 지으면 건설 인건비가 아시아보다 4∼5배 높고, 운영 인건비 역시 2∼4배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 공장 가동 시 필요한 소재·부품 조달 비용, 생산성 저하 등을 종합적으로 본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 SK, 마이크론은 주요 제조 기반을 한국, 중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에 둬 왔다. 메모리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국내에서 첨단 반도체를 만들고 중국에서 일부 구형 반도체를 생산한다. 3위 마이크론 역시 한국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수십 년간 주요 공장을 일본과 대만에 두고 메모리를 생산해 왔다. 1981년 설립한 미국 버지니아 공장이 있지만 구형 반도체 중심이고, 마이크론 전체 생산 물량의 10%에 미치지 못한다.
반도체 업계에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16일(현지 시간) “메모리 생산 기업이 100% 관세를 지불하거나,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메모리 반도체 업(業)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문제는 러트닉 장관의 발언이 마이크론의 미국 생산 복귀를 알리는 뉴욕주 ‘메가팹’ 착공식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마이크론은 이날 2040년경 자사 D램 생산의 40%를 미국에서 제조하겠다는 청사진을 발표했다. 기업이 비용 부담을 떠안더라도 미국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 칩’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지금은 메모리가 품귀현상을 빚고 있지만 3, 4년 뒤 업황은 모른다”며 “주문형인 TSMC의 파운드리(위탁제조)와 달리 메모리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큰 리스크 요인이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