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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가 열리는 오전 9시, 회사 화장실 붐비는 한국

증시가 열리는 오전 9시, 회사 화장실 붐비는 한국

Posted November. 22, 2025 07:15,   

Updated November. 22, 2025 07:15


주식 시장이 출렁이는 날도 있지만 투자 열풍은 식지 않는 분위기다. 코스피가 하락할 때도 주식을 대량으로 던지고 떠나는 외국인과 달리 ‘개미’들은 저가 매수를 시도하며 코스피를 떠받쳤다. 그래서인지 요즘 유독 ‘오전 9시 무렵에 회사 화장실이 붐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국내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화장실 칸마다 문 닫고 들어가 스마트폰 주식 창을 여는 직장인이 많다는 얘기다. ‘오전 9시엔 빈자리가 없으니 더 일찍 가야 한다’고 귀띔하는 이도 있었다.

주식 시장이 성장하는 건 일반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한국 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국내 증시는 금융당국에 오래도록 ‘아픈 손가락’이었다. 당국자들은 한국 경제 규모만큼 성장하지 못한 증시 육성에 책임을 느끼고 있었기에 증시 얘기만 나오면 목에 힘을 주질 못했다. 기업들은 실적을 내도 증시는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하니 부잣집의 성적 부진한 아이 공부시키듯 여러 부양책을 냈다. 그래도 분위기를 반전시키긴 쉽지 않았는데 요즘 보지 못한 지수를 보니 다행스럽고 반갑다.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세대를 중심으로 개인 투자자들도 투자 재미가 쏠쏠하다. 이들은 천정부지로 오른 부동산에 대한 ‘포모(FOMO·소외 공포)’를 주식 투자로 달랜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오전 업무를 잠시 제쳐두고 화장실로 달려가며 어떤 마음일지 생각해 보면 씁쓸해진다. ‘이제는 주식 투자 외에는 돈 벌 기회가 없다’고 여기지 않을까.

실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됐다. 물가는 계속 오르는데 ‘오르지 않는 건 내 임금뿐’이란 말이 많다. 임금도 오르긴 하지만 물가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한다. 10년 전만 해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7%였지만 올해는 거의 매달 2%를 넘긴다. 반면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이달 4일 기준으로 올해 월평균 급여는 전년 대비 2.7% 올랐다. 10년 전 임금 상승률 3.1%에 비해 둔화했다.

임금 상승 속도가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니 일의 가치가 더 외면받는 풍조가 퍼지는 분위기다. 최근에 만난 한 기업의 40대 팀장은 “아침마다 주식 창을 열 생각도 못 한 채 열심히 일만 생각하고 고민했던 나만 바보가 됐다”고 털어놨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임원보다 건물주’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다.

‘열심히 일하느니 투자에 공들이는 게 낫다’는 정서가 강해지면 일터로 향하는 이들의 정신 건강에도 안 좋을 뿐 아니라 결국 기업의 생산성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주식 창을 볼 때만큼이나 월급통장 보는 설렘이 크려면 성장 기업이 많아져야 할 것이다. 반도체 산업에 집중된 온기를 다른 업종으로 퍼지게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사실 임금을 단시일에 끌어올리기엔 대내외적인 상황이 만만치 않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업들은 성장을 위한 노력과 함께 임금 체계도 계속 바꿀 필요가 있다. 직무 가치와 성과를 기반으로 임금과 보상 체계가 정착되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정부는 자본소득에 대한 세금이 근로소득에 비해 낮다는 지적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투자 열풍 속에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한 반발이 심했던 만큼 당장 많은 걸 바꾸긴 힘들지만, 자본소득과 근로소득의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해결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