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나면서 이번 회의가 한국 산업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우선 ‘인공지능(AI) 반도체’가 가장 큰 수혜를 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간 재계의 불안이 컸던 한미 관세 협상과 미중 무역 분쟁이 APEC 기간에 일단락된 것도 긍정적인 영향으로 꼽힌다.
●APEC 수혜 산업 된 반도체·AI 인프라·자동차
2일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APEC 기간의 최고 수혜 산업으로 반도체를 꼽았다. 글로벌 1위 AI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일명 ‘치맥’(치킨+맥주) 회동을 가지며 ‘민간 AI 동맹’을 강화한 데다, 한국에 품귀 현상을 보이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 장을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도 선언했다. AI 칩 제작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D램, 낸드 플래시 등을 대거 수급하기로 하면서 ‘AI 팩토리’ 사업을 강화할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차세대 HBM인 ‘HBM4’의 엔비디아 납품을 사실상 확정한 데 이어 엔비디아의 로보틱스용 애플리케이션(AP)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번 APEC 최고의 수혜 기업 중 하나로 떠올랐다.
엔비디아,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AI 기업들과의 협력이 구체화하면서 앞으로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사업도 APEC의 수혜를 톡톡히 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 유입되는 엔비디아의 GPU 대부분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들어간다.
자동차, 로봇 사업 역시 수혜 산업으로 꼽힌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로부터 5만 장의 신규 GPU를 공급받기로 하면서 소프트웨어기반자동차(SDV), 자율주행, 로봇 개발 등의 미래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현대차 측은 “엔비디아의 AI 추론 모델과 소프트웨어 등을 기반으로 차량 기능과 성능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APEC 기간 중 미국의 한국 자동차 관세가 25%에서 15%로 낮아진 것이나, 중국 정부의 희토류 수출 통제 확대가 유예된 것도 국내 자동차 업계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조선업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하면서 APEC 수혜 산업으로 주목받았다. 지난달 30일 60조 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사업 최종 결정을 앞두고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방문하면서 한화오션이 ‘겹호재’를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등 기회 못 찾은 철강-석유화학
반면 철강업계는 ‘우울한 가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잇따라 관세율을 50%까지 높인 데다, 중국의 저가 공세도 지속되면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APEC에서 어려움을 해소할 별도의 조치가 발표되지 않았다.
APEC에서 기후 규제 강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정유와 석유화학 등 탄소배출량이 많은 산업이 타격을 받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80%를 공급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엔비디아와의 협력 강화가 적지 않은 호재”라며 “APEC 기간에 한미 관세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드는 등 산업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