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일종의 ‘핵능력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칭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락해 온다면 만나겠다고 24일(현지 시간) 밝혔다. 29일 1박 2일 일정의 방한을 앞두고, 북한 핵 보유를 일부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며 김 위원장과의 ‘깜짝 회동’에 나설 의지가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또 의도적으로 북한 핵능력을 언급하며 김 위원장을 향해 유화 제스처를 취했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트럼프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하며 핵 폐기 대신 핵 동결 또는 핵 군축 협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시사한 것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날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순방길에 오른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한국에서 김 위원장을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가 연락해 온다면 그렇다”고 밝혔다. 또 “나는 그와 아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그가 만나길 원한다면 나는 열려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앞서 자신들이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취재진 발언엔 “그들은 일종의 핵능력 보유국”이라며 “나는 그들(북한)이 몇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월 취임 뒤 수차례 북한을 핵능력 보유국으로 표현해 왔다. 다만 방한이 임박한 시점에 이같이 언급한 건 깜짝 회동 제안은 물론이고, 북한 핵능력을 사실상 인정하고 향후 핵군축 등 ‘관리 모드’로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해 정부는 한미 양국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변함없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26일 “관련 언급은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 사실을 거론한 것으로 본다”며 “한미 양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공통된 목표하에 긴밀히 공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북한 내 미국통인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간 중 최 외무상이 한반도를 떠나 있을 가능성이 커져 북-미 정상 회동 가능성은 낮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사실상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는 분석과 함께 대미(對美) 협상력을 끌어올리려는 시도란 분석도 제기된다. 트럼프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24일 온라인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순방 일정에 김 위원장과의 회동 일정이 잡혀 있진 않다면서도 “변동이 생길 순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