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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한일회담 결렬시킨 ‘구보타 망언’, 한미관계 균열 이용한 日의 의도적 전략”

“1953년 한일회담 결렬시킨 ‘구보타 망언’, 한미관계 균열 이용한 日의 의도적 전략”

Posted February. 11, 2022 07:36,   

Updated February. 11, 202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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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 제3차 한일회담을 결렬시킨 이른바 ‘구보타 망언’은 한미관계 균열을 이용한 일본 정부의 의도적 전략이었음이 확인됐다.

 최근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 외교문서를 묶어 펴낸 ‘한일회담 일본외교문서 상세목록집’에 따르면 1953년 6월 21일 일본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는 “3차 한일회담을 고의로 지연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일한회담 무기 휴회안’을 작성했다. 실제로 문서작성 후인 그해 10월 한일회담에서 구보타는 “일본 통치는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라는 망언을 쏟아내 한일회담은 이후 5년간 중단됐다.

 16장 분량의 휴회안 문서에서 구보타는 이승만의 1953년 거제도 반공포로 석방을 계기로 한국 정부가 수세에 몰렸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승만 정부의 북조선 포로 2만5000명 석방으로 한국은 유엔에 반역하는 태도를 취하게 됐다. 이승만이 세계의 고아가 되려는 정책으로 지탄을 받아 머지않아 물러나게 될 것”이라며 “곧 몰락할 이승만과의 회담 속행은 재고해야 한다”고 썼다.

 이승만 정부는 1953년 6월 18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있던 반공 포로들을 일방적으로 풀어줘 한미관계가 삐걱댔다. 일본 정부가 이를 빌미로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 문서는 일본 정부가 2007년부터 10년간 공개한 한일회담 외교문서 약 6만 장 중 일부다. 2007년 첫 공개 당시 일본 정부는 문서의 핵심부분을 먹칠한 채 제공했으나, 일본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정보공개재판 청구 끝에 원본 일부가 추가로 공개됐다.

 조윤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 정부는 구보타 망언이 사견이라고 했으나 이번 문서를 통해 결렬 책임을 한국에 떠넘겨 회담을 무기한 연기하려는 일본 정부의 전략이었음이 밝혀졌다”며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이를 철저히 이용했다”고 말했다.


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